이스라엘 성지순례 열한번째날
마지막날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로 가서 욥바를 들러 저녁을 한후 공항으로 갔습니다.
Ep12.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로, 욥바지역
예루살렘 박물관
와디겔트 전망대에서 조망한 여리고 뒤의 산지는 요르단 지역이다.
예루살렘 박물관은 성경의 역사적인 무대가 어떤 문명과 당시 고대근동과 어떤 관계의 흔적들이 있는지 잘 보여주었습니다.성경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고고학적인 발굴물들은 더욱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대한 다음의 기회를 기대케 했습니다.
텔 벧세메쉬 (Beth Shemesh)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로 가는길에 엠마오가는길을 지나갔습니다. 중간에 텔 벧세메쉬에 들렀습니다.
델 벧세메쉬 정상에서 단체사진
엘리 대제사장이 실로에서 섬기고 있을 때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과의 전쟁에 언약궤를 가지고 나갔다가 언약궤를 블레셋 족속에게 빼앗겼다. 블레셋 족속은 언약궤를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전에 두었지만, 하나님 께서 다곤 신상은 물론 아스돗 주민을 심판하시자 언약궤를 아스돗에서 가드로, 그리고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옮겼다(삼 상 5장). 하나님의 거듭된 심판으로 두려움에 빠진 블레셋 족속은 결국 언약궤를 되돌려 보내기로 결정했는데, 그 방 법은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않은 젖 나는 소 두 마리가 끌게 해서 곧바로 벧세메쉬로 가면 이스라엘 의 하나님 여호와가 자신들을 심판하신 것으로 여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실제로 언약궤를 실은 수레를 끄는 젖 나는 암소 두 마리는 새끼를 물리친 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쉬로 직행해서 블레셋 족속의 성읍들에 내린 재앙이 하 나님의 심판이었음을 입증했다(삼상 6:1-18). 언약궤를 인계받은 벧세메쉬 주민들은 언약궤를 들여다보아서 하나님 의 심판을 당하였으며, 결국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으로 보내졌다(삼상 6:19-7:2). 블레셋 족속이 언약궤를 수레에 실 어 벧세메쉬로 보낸 것은 그 성읍이 사무엘 시대에 유다 지파와 블레셋 족속의 접경 성읍이었기 때문이다. 분열왕국 시대의 남유다 왕 아하스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벧세메쉬를 블레셋 족속에게 빼앗겼다(대하 28:18). 이 곳에서는 벧세메쉬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그곳이 소렉 골짜기에 있으며, 사사 삼손의 활동과 지리적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욥바(Yaffo)
베드로의 사역의 꽃을 피기 시작한 욥바입니다. 이 교회는 도르가(다비다) 기념교회입니다.
베드로가 머물렀던 무두쟁이 시몬의 집입니다.
지중해와 연결된 오래된 항구도시입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하기 위해 배를 탄곳도 이곳이고,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린 곳도 이곳입니다. 무두쟁이 시몬 집에 있다가 환상을 보고 이방인에 대한 마음이 열리게된 그리고 백부장 고넬료의 요청을 받은 곳이 욥바입니다.
지금은 휴양지로 유람선이 유럽에서 들어옵니다. 다른 이스라엘과 달리 매우 개방적인 분위기에 해안가의 적절한 기후가 세계사람들을 모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베드로가 복음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했으니, 더 멀리 널리 복음이 전해졌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