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장-2장, 9월20일 화요일



나는 몹시 괴로워하며 걱정하는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분에게 그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을 마음 아프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내가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려 주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2:4)

주일부터 내린 비로, 가을이 더 성큼 다가왔습니다. 나무는 성숙해졌고, 이미 떨어진 낙옆은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구석진 곳 혹은 걸릴만한 모든 것에 모아져서 이를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을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보통 이런 시간이 오면 한해를 마무리하려는 준비에 분주해집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시간이 빠르다며 서둘러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고 남은것들을 마무리 하기 위해 이런 저런 계획들을 세워갑니다. 자연스러운것이고 늘 반복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반복되는 삶의 여정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만나는 사람과의 다양한 엑티비티 인것같습니다. 내가 혼자 있으면 경험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친구나 이웃을 통해 간접적으로 듣는 것은 무용담을 듣는 것을 넘어서 더 큰 이야기로 와닿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게 이런 이야기들은 내 입술을 통해 다시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며, 이야기는 소문으로 소문은 이제 하나의 정보로 나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로마서를 넘어서 고린도후서를 나눕니다. 고린도교회에 대한 바울의 정성은 두개의 서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1년반을 머물면서 세운 고린도교회는 거의 기적처럼 세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큰 무역도시로 다양한 인종, 문화, 종교들이 혼재했던 곳이었습니다. 다양성이 존재했다는 것은 그 만큼 갈등과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는 등 평범한 도시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가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 다양한 종교에는 늘 그렇듯 바울이 전한 복음이 긍정적으로 자리하다가 이런 다양성에 복잡한 질문과 내용들이 교회를 흔들어놓은듯 합니다. 대게 교회의 문제들은 성도들이 갈등으로 불거지는데 이 갈등의 원인이 이 다른종교에 익숙한 행위를 어디까지 허용하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결국 새로운 것을 어떻게 적응하고, 대처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바울이 적극적으로 고린도교회에 권명하는 내용으로 고린도후서를 이해하시면 되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하지 말아야 할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르게 보면 새로운 것을 어찌 받아들일것인가?에 대한 바울의 고민을 나누는 것이라고 볼 수있습니다.


가을, 이 시간에 저에게 특별한 것은 마무리라는 개념보다는 어떤 시작을 할 것인가?에 무게를 두고 있으니 좀 특별한 습관이 있는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어떤 계획으로 목회를 하고, 삶을 살고, 사람들과 깊이 교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크게 와닿는 것 같습니다. 아마 11월중순을 넘어서거나 12월초에 한주정도 이 계획을 위해 정해진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이시간을 맞이하는 다짐이나 관계는 저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을 것입니다. 시간은 가고 새로운 것들은 우리를 마중나옵니다. 시간이 가서 아쉬움으로 마음을 토닥이는 것보다, 마중나오는 새로운 것에 흥미를 가지며 기다리는 것이 우리들에게 이 시간에 주어진 특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행인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꿈꾸고, 함께 세워가야할 공동체가 있으니 내년의 시간은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묵상

바울의 고민이 무엇이었을까요? 여러분이 지금 새로운것을 마주하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중보기도

  1. 열린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성숙한 신앙공동체로 세워지도록 기도해주세요

  2. 환절기의 시간을 든든히 주님과 동행하며 보낼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특별히 질병가운데 있는 분들이 홀로 외롭게 있지 않음을 연락을 통해 마음을 나눠주세요

  3. 소망회 회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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