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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1:27, 대림절 첫째주


때문에... 믿움을 받는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눅21:27)


새벽은 겨울을 느끼게 하고, 아침부터 점심전까지는 봄 또는 가을을 느끼고, 오후에는 약간의 초여름 정도를 느끼게 해주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루에 사계절을 경험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 살고 있는 곳에 대한 "날씨"의 특별함을 특정해 봅니다.


문득, 미국에 처음 올 때가 생각났습니다. 전적으로 저의 의지와 결단으로 가족들이 줄줄이 달려왔습니다. 큰 아이는 영어한마디 못하는데 학교로 내몰아 졌고, 둘째는 집에서 엄마와 지루한날을 보냈습니다. 저도 나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씨름 했던 그 순간이 갑자기 밀려왔습니다. 큰 애가 가장 고생했고, 나머지 가족들도 나름 고충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시간이 지나서 다들 익숙해진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해졌다는 생각에 안도하는 마음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이 익숙함을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함께 몰려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 때문에, 제자들이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들이 지금 기다리는 예수님 때문에, 우리들은 세상에서 미움 받을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한 절만 보면, 우리들이 지금 기다리는 예수님이 마땅히 우리들의 삶의 방향이 되실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 “하지만” 이렇게 시작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고, 참고 견디는 가운데 목숨을 얻게될 것이다.” (눅21:18-19) 미움을 참고 견디면 손해보는 것 없이 목숨을 얻게됩니다.


여기서 “목숨”은 헬라어의 “Ψυχή”(푸쉬케) 를 번역한것입니다. “바람”, “생명”, “영혼”을 뜻하는 말입니다. “견디어냄(기다림)”은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저의 무모한 미국행이 견디어냄을 통해 “생명”처럼 일으켜 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뜀으로 살아감을 느끼고, 뛰는 가슴을 붙들고 살아야 살맛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다림으로 가슴이 뛰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를 특정하는 모양인 것 같습니다.


묵상

무모했던 적이있나요? 그무모함의 결과는어떻게 기억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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