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아는 요야김을 낳고, 요야김은 엘리아십을 낳고, 엘리아십은 요야다를 낳고, 11요야다는 요나단을 낳고, 요나단은 얏두아를 낳았다.(느헤미야 12:10)
성경을 읽을때 족보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합니다. 일일이 다 외울수도 없고, 이해할수도 없는 이름들의 나열은 성경을 일독하겠다고 마음 먹은것을 자연스럽게 꺾어버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창세기에도 등장하고, 역대기에도 등장하고, 마태복음에도 등장하는 족보의 나열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포로기를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몇가지 필요한 숙제가 있었습니다. 앗수르에 의해 북왕국이 망하고, 바벨론에 의해 남왕국이 망하는 동안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앗수르는 혼혈정책을 식민지 정책의 방향을 정했음으로 이방인의 이주와 강제결혼으로 인한 유대인 정체성을 희미하게 하는 일에 노력했습니다. 사마리아인이 바로 대표적인 혼혈화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바벨론시기에는 포로라는 정책으로 식민지를 다스렸는데, 이스라엘에 많은 이방인들이 강제이주되어서 살게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포로를 마치고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다시한번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방인을 멀리하고, 혼혈화된 유대인들과 거리를 두는 것에 힘을 쏟았습니다.
우월감으로 또는 배타적인 정책이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에 나라를 다시 재건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었으니 더욱 철저히 이런 방향으로 나라를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마 위기의 시대에 민족주의만큼 유다를 단단히 묶어내는 방법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배경으로 족보가 등장합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이 지루한 문장의 방향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혼혈화되지 않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의미만 알고 족보를 진지하게 읽지 않아도 성경을 읽어내는대는 무리가 없습니다.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안다면 또한 이런 민족주의적인 노력에 힘을 뺄 필요도 없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담을 쌓고 영적 전쟁을 선포하는 이유도 안으로는 결속을 강화하고 그만큼 교회가 위기라는 생각때문에 드러나는 방향이지 절대적인 진리때문이 아닙니다.
교회가 위기일때 우리들은 성경을 통해 그 위기를 잘 파악하고 하나님이 어디로 우리를 이끄시는지를 잘 확인해야합니다. 특히 예수님은 가장 큰 위기의 시대에 때아닌 복음을 선포하신 분이심을 기억하신다면 우리들의 기본적인 신앙과 교회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하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막연하게 성경에 등장하는 민족주의적 요소나, 배타적인 방향을 성경의 가장 큰 진리로 생각하면 안되고, 그에 맞는 그 시간에 필요한 것을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신앙생활은 바로 이런 긴장관계를 잘 이해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가시는지, 예수님의 복음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잘 파악하고 삶을 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묵상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어떤 마음으로 이끄시는것 같으세요?
중보기도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의 생각보다 크심을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가운데 든든히 동행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새로 바뀐 환경으로 교회 사역에 많은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변화가 많은 시간이다보니 잘 정돈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잘 정리하고 잘 마련된 공동체를 세워가기 위해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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