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나를 위해주고 축복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다만 그 사람들이 나의 개인사에 뛰어 들어와 내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내재적, 외부적 요인들을 파헤치며 결정을 뒤바꾸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요. 친척들이 요한이라는 이름을 썩 내켜 하지 않았던 순간에 엘리사벳도 그러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 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도울 배필을 한 명 더 지으셨지요. 태초의 인간에서 시작하여 그의 자손들이 대를 이었습니다. 인류는 그렇게 서로 도움을 주며 함께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예수님이 하나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마을에서 함께 길러졌던 이유였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3년의 공생애 동안 제자 들에게 가르침을 전한 것도 그 이유였을지도요. 그분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우리를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하셨을 때, 제자들이 초대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면서 사랑의 공동체인 그리 스도인의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 그 자체이기도 했습니다. 그 공동체는 믿는 자들을 향한 자비와 희생으로 점철되는 예수님의 사랑에서 비롯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혼자가 되지 않도록 나머지 당신의 백성도 제 곁에 함께 두신 것에 감사합니다. 아멘.
생각과 나눔
공동체에서 생활하면 어떤 이점이 있나요?
어떤 문제점이 있나요?
여러분이 살아온 공동체 중 가장 그리스도를 닮은 공동체는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어지는 생각
어제는 분주한 날이었어요. 오전일찍 안과에 들려서 눈검사를 하고는 서둘러 오린다 캠퍼스에서 루핑하시는 분과 교회 지붕을 살폈어요. 살펴본 결과, 저는 자세한 용어들에 대해서 모르지만, 큰 돈을 들여 교회 손을 볼때 하면 좋겠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나눠주셨어요. 급하게 할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겠죠.
이어서 잠깐의 줌미팅을 한후에, 연회직원과 감리사님이 오셔서 교회를 둘러보고, 사택을 둘러보러 갔어요. 5년전의 흔적이 그대로, 그때 두고간 신라면 사발면 한박스도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말없이 둘러보다가, 감리사님이 완전히 새로 지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에, 아껴두었던 말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다들 생각은 같았던 거죠. 예상한대로 심각한 상태이지만, 연회에서 적극적으로 레노베이션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긴 시간 기다림 끝에 결과는 생각보다 더 우호적이고, 서로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마음은 기왕이면 우리 교회가 더욱 성장하고 단단하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함께 담겨 있겠죠. 무거운 책임, 그리고 거룩한 부담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가득 지워진것 같습니다. 세상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서로를 도우는 마음으로 세워지는 뜻있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중보기도
게이코 집사님이 어제 갑작스러운 어지러움으로 존 뮤어 병원 응급실에 가셨어요. 오늘 잠깐 들려보려고 합니다. 기도해주세요.
유스 아이들을 위해서 기대,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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