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생후 1주 차에도 사가랴가 여전히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본 적 있나요? 요한이 태어나면 사가랴의 침묵 상태도 끝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다른 계획이 있으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는 수 없이 사가랴는 갓 태어난 요한의 손가락과 발가락의 개수를 조용히 셌지요. 그리고 그의 아내가 아기에게 수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가만히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우는 아이를 말없이 보듬어 주는 것으로 달래 줄 방법을 터득해 나갔지요. 흘러가는 나날 속에서 사가라는 혹 하나님 이 자신을 잊어버렸다고 원망하지는 않았을까요?
그런데 요한의 할례식이 있던 날, 드디어 사가랴에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천사와의 약속대로 사가랴는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었고, 하나님은 그에게 목소리를 되찾아주셨습니다.
왜 그제야 사가랴의 혀가 풀린 걸까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짐작한다면 천사가 한 약속의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성취되는 과정이었을까요? 그랬을지도요. 사가랴가 서판에다 자신의 신실한 마음을 담아 아들의 이름을 쓰는 경험을 하게 하려고 하신 걸까요? 그의 불신실했던 언행이 있은 지 9개월 후에야 경험하도록 의도된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은 아무도 모를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가랴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을 겁니다. 그에게는 이제 아내와 갓 태어난 아기가 있었습니다. 혀가 풀려 다시금 말할 수 있게 되었지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사가랴를 단 한 순간도 떠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사가라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되찾은 그의 목소리로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찬양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 하나님이 우리를 까맣게 잊어버리신 것은 아닌지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시련의 시기에도 그분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만들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우리에게 영원토록 내려진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 과 용서를 깊이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침묵과 어둠 속에 앉아있을 때도 저와 함께하소서. 아멘.
생각과 나눔
언제 하나님이 멀게 느껴졌나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나요?
고난 중에 주님을 어떻게 신뢰하나요?
이어지는 생각
게이코 집사님을 문병다녀왔어요. 병실에 계신데 집중 트라우마병실에 계셔서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병실에 도달하다보니, 병원 구석 구석을 지나서야 도착했어요. 병원을 갈때 마다 느끼는 것은 미국에서 병원만큼 좋은 인테리어와 건축 자재를 사용한 건물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아픈 분들이 계시다보니, 공간 자체를 꽤 의미있게 디자인한것 같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니 트리도 그렇고, 밖에 아직 크지 않은 세쿼이아 나무에 세그루에 성탄장식을 이쁘게 해놓았습니다.
집사님을 위로하고, 기도하고 내려오면서 문득 든 생각은 요즘 교회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그런지, 인테리어, 건축자재, 구조 뭐, 이런것들만 눈에 들어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에 관심있는 것을 검색하면 이어져서 계속 눈에 띄게하는 마케팅을 신기해 했는데, 사실 사람의 마음에 이미 이런것들이 존재했었네요.
사가랴의 침묵은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완성하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강제로 말을 못하게된 상황이었지만, 긴 침묵이 사가랴의 마음을 깊이 패이게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갑작스러운 삶에 큰 줄기에 하나씩, 하나씩 생각의 열매들이 달렸을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경험은 당혹스럽지만 중심에 큰 줄기를 잊지 않는다면 결국 큰 열매들이 달려질 것입니다.
중보기도
게이코 집사님이 복잡한 진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도해주시고, 진단이 좋게 나오면 이번주일에 얼굴을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일은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기쁨이 넘치는 기다림"이라는 말씀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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