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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묵상, 12월 16일




공의로움


“아들에 관해서는 성경에 이르기를 "하나님, 주님의 보좌는 영원 무궁하며, 공의의 막대기는 곧 주님의 왕권입니다.” (히1:8)



요즘아이들은 Facebook에 대해 아저씨, 혹은 아버지 세대가 사용하는 것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30대가 대부분인 이사들이 페이스북을 이끄는데도 그 만큼 요즘 세대의 감각에 맞지 않는 다는 것이겠죠, 대신에 instagram 이나 Snapchat이라는 것을 많이 사용한다고 하는데, 궁금해서 이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했는데 저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제가 요즘 아이들의 감각과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이야기겠죠.


지난번에 구글(Google)의 “회의 운영: 직급과 연봉을 공개하지 않는 회의진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반면에 퀄컴(Qualcomm)이라는 IT기업은 전형적인 수직관계(Hierarchy)시스템을 유지하고 회사를 운영한다고 합니다. 잘아시겠지만, 구글은 지금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퀄컴은 회사운영이 점점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변화된 사회구조속에서 어떻게 적응하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바뀌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포스트모던을 지낼때도 복잡하게 느껴지는데,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에 세상은 "모든 분야가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분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빠른 변화에 적응해야하는 시대를 살아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효율성의 기준이 바뀌었고, 예전에 어림 없는 것들이 주목받는 시대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럴때 전통적인 것들이 소홀해지고, 특히 오랜 시스템들은 오히려 새로운 변화에 방해가 된다는 진단을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전통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끊임없이 전수되어 지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전통은 구조에 대한 의문과 여러진단이 나왔지만, 가족애와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종교적 영역도 큰 변화가 없어보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도 역사하신다.” 라는 기독교적 고백은 아브라함의 고백이나 지금 저희 어머니의 고백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이 처럼 변함없는, 조금도 흔들림없는 믿음으로 세워진 신앙을 우리는 진리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영원 무궁하고, 주님의 왕권은 공의의 막대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고백이 아니라, 진리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왕권”하면 떠오르는게 “힘”인데, 우리들이 고백하는 기독교 전통속에 “힘”은 “공의”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왕권, 주님의 보좌는 세상의 왕권, 보좌와 다릅니다. 그러니 우리도 다른 구조와 이해속에서 이땅을 살아가야합니다. 히브리서에 등장하는 “공의”(εὐθύτητος)는 다른 본문에 등장하는 공의와 다른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뜻은 비슷하지만, 정의로움에 공정함 즉 “편향됨이 없는” 정의를 말합니다. 자기편, 자기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정의를 실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의 보좌이고 왕권의 힘입니다.



묵상

“공의”로움에 대해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세상은 이런 공의가 함께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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