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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묵상, 12월11일 금요일



평화의 왕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이사야 9:2)




전제군주제에서 왕은 절대 권력을 가집니다. 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왕을 신적 권위를 갖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성경안에 보면 애굽이 그랬고, 대표적으로 로마황제도 신적권위를 가짐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정교일치 시대에 최고 통치자가 신적 권위를 갖는 것은 당연하게 보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왕”은 애증의 문제입니다. 출애굽 하기전 애굽의 바로가 지녔던 절대권력을 목격 했을 것입니다. 당시 고대근동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왕정체제였고, 전쟁에서 중앙집권을 갖춘 나라는 더 효율적으로 전쟁을 치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출애굽 이후에 유대인들은 "사사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유지합니다. “왕”에 대한 부정적 이해와 “하나님”과 동일선상에 “왕”을 세울 수 없다는 이유 때문 이었을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왕정제도를 갖춘 나라로 이스라엘이 변화를 맞지만, 이스라엘의 왕정시스템은 우리가 아는 것 처럼 긍정적이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을 끝으로 나라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졌고 다윗, 솔로몬 이후에 대부분의 왕들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로마는 유대종교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유대종교적 시스템을 유지하도록 합니다. 물론 나중에 성전을 파괴하고 제단에 제우스상을 올려놓는 파국을 맞이하지만, 그만큼 왕의 권력이 종교적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강하게 반발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이런 정황에, “평화의 왕”으로 예수님을 표현하는 것은 “왕”에 대한 새로운 선언입니다. 힘의 정점에 “왕”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와 신앙의 정점에는 겸손이 있습니다. “평화의 왕”은 더 이상 전통적인 “힘의 정점”의 왕이 아닌, 세상의 왕과 다른 “겸손과 평화의 왕”이 오신다는 선언입니다. 이 선언에 우리들의 마음을 두는 시간을 보내시며 평화 가운데 계시길 바랍니다.


묵상

힘의 정점을 향해 바라보고 있나요? 겸손이 정점을 향해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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