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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묵상, 12월17일 목요일



은혜와 진리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요한복음1:14)

 

시간이 지나서 이 두 형님들이 번듯하게 자랐습니다. 더 이상 다툼도 안하고 교회봉사를 열심히하는 훌륭한 선생님(?!)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 중 레슬링을 하던 형은 “용인대”에 진학해서 CCC활동을 열심히 한것 같습니다. 함께 교회학교를 봉사하던중 미모가 뛰어난 교회누나가 교사로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이 형이 소위 “한눈에 반한 사건(?!)” 이 일어난 것입니다. 제가 그 누나와 가깝게 보였는지 그 형이 소개를 시켜달라는 말에, 저의 냉정한 반응이 그 형의 가슴을 후려 쳤습니다. “형, 눈이 너무 높아~! 좀 낮춰요~!” 지금도 잊을 수 없는게 그 형의 서운한 눈빛이었습니다. 아마 어릴적 당한 고통(?!)에 대한 소심한 복수였을지도 혹은 진심 맞지 않는 상대라고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어느날 이 형님이 사라졌습니다. 한참을 보이질 않아서 수소문해서 물었더니 그 형님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겁니다. 그것도 운동으로 간것도 아니고, 경제학을 공부하러 갔다는 이야기에 조금 의아해 했는데, 몇년이 지났는데, 박사과정을 공부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이후에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저의 자극(?!)적인 직언(?!)으로 삶에 변화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와는 상관없이 그 형에게는 특별한 “비전"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평소 자기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기 위해 새로운 여정을 떠났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그 모습에서 그 여정이 제법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함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닙니다. 은혜는 감정적 영역이고, 진리는 이성적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고백하게 되면, 이성과 감성이라는 영역이 고스란히 우리안에 어울려 녹아집니다.

세상은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냉정한 잣대로 현실을 분석하는 것을 지혜롭다 하지만, 신앙은 불확실함과 비 이성적인 영역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두는 훈련을 통해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확실한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것을 믿을 때 믿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드러나지 않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는 영역으로 우리들의 삶의 무게를 두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될꺼야?는 더이상 우리에게 필요한 단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날마다 그 너머의 기적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묵상

무엇을 기대하며 살고 있습니까? 현실 너머의 삶에 무게를 둡니까? 아니면 현실에 무게를 두며 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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