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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묵상, 12월9일 수요일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 분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오. (눅 3:16)



예전에 전화기가 갑자기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베터리 수명이 다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었는데, 전화기 자체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베터리가 다 된 것처럼 죽었다가 어느 순간 불쑥 다시 살아나면 남은 베터리 양에는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희한하고 이상했습니다. 대게 핸드폰 베터리 수명이 다 되어서 생긴 문제와는 다른, 말그대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반복했었습니다. 불편한것은 둘째치고, 죽었다 살아나는 핸드폰이 저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핸드폰이 없을 땐 어떻게 살았니?” ,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는 시간에 더 깊이 기도하면 얼마나 좋겠니..” 뭐 말 같은 이야기일까 싶지만, 전화기가 죽었다가 살아 나기까지 시간은 긴 공백처럼, 침묵처럼 느껴졌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내야할지 고민을 하게 합니다.


세상이 바뀌어서, 손에 쥔 전화기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전화기를 이용해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요즘같이 추운날에는 차 실내온도를 셋팅해 둘수도 있습니다. 왠만한 은행업무도 전화기로 가능하고, 틈만나면 뉴스와 SNS로 소통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삶은 같은데, 삶의 여백이 느껴지지 않는 삶을 사는 듯합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기계에 오히려 사람이 지배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앞으로도 이보다 더 진보된 세상을 소개합니다. 이보다 더 편안한 세상, 신기한 세상이 기대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여백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머뭇 하게 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 세상을 불처럼 살다간 “세례요한”의 고백입니다. 자신의 사역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나름 따르는 자들을 거느리고 앞만 보고 가고 있을 때, 그 자리에서 멈춘 것처럼 세례요한의 여백이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그 여백을 통해 우리들에게 들어내는 것은 자신에게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무게를 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보다 더 능력있는 분이 오십니다~!”


전화기가 죽었다 살아나는 불편함은 저에게 여백을 선물로 주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능력있는 삶의 여백에 내 삶이 잠시 머물러있게 하였습니다. 더 좋은것, 더 힘센 것을 찾는 세상입니다. 대림절의 기다림은 이런 세상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기다림의 여백, 침묵의 여백이 내 삶에 더 능력있다고.


묵상

내 삶에 자양분은 어디서 오는 것 같습니까? 능력주시는 분을 기대하며 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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