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에게 있어 이 시기가 여행하기 좋은 타이밍은 아니었습니다. 마리아의 출산 예정일이 임박했고, 요셉은 생업을 잠시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황제의 분부대로 그들은 요셉이 고향이었던 베들레헴으로 이동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의 거리는 110킬로미터 정도였습니다.
마리아가 타고 갈 여분의 나귀는 있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주로 걸어서 이동했고 마리아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집 사정이 넉넉치 않은 데다 식민 통치를 받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면 그저 주어진 상황을 순리로 받아들이는 수밖에요. 게다가 마리아가 출산했을 즈음에는 친정 식구들과 멀리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 세상의 변방 구석에서 예수님이 나셨습니다. 아기와 여성의 인권은 묵살되고 억압적인 권력자들이 추앙받던 세상, 돈 없이는 예수님의 가족조차 대접받을 수 없었던 세상에 예수님께서 오셨던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하나님은 그럼에도 이 특정 공간과 시간과 가정에 예수님을 보내시기를 택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주시기로 한 것이지요. 그렇게 그분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짊어지셨습니다. 33년이 지나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그 짐을 내려놓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 53:4 참조)
예수님은 사랑으로 우리 모두에게 생명과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 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은 언제나 기쁨과 평화로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리스도가 소유한 영생을 함께 누 릴 수 있게 됐습니다!
기도합니다. 주 예수님, 저를 멀리하지 마시고 언제나 당신 가까이에 두소서. 아멘.
생각과 나눔
내가 겪는 고통을 예수님께서도 경험하셨다는 사실이 나에게 도움이나 위 로가 되나요?
만약 도움이나 위로가 되거나 또는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 해 봅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이 내어주신 생명과 기쁨을 계속해서 누 리게 될 것입니다. 이 문장이 여러분에게 어떤 생각과 느낌을 주나요?.
이어지는 생각
어릴적 부터 늘 베들레헴으로 올라간다는 구절때문에 나사렛 보다 베들레헴이 북쪽에 위치한줄 알았습니다. 올 봄에 성지순례를 갔을때, 나사렛이 더 북쪽이고, 베들레헴이 남쪽에 있고, 여기서 올라간다는 의미는 베들레헴이 산지에 있는 동네이기 때문에 산에 올라간다는 표현을 쓴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글로 이해하는 것에 대한 한계는 이 밖에는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눈으로 간절히 보기 원하면서 우상을 찾아헤맸던 이스라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좀더 성숙한 단계의 신앙을 우리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사실, 잘 믿어서가 아니라, 보지 않고도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수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호구조사때문에 고향을 떠나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 가게 된것입니다. 황제의 명령이니 두주안에 이 모든 행위를 끝내야할 일입니다. 호구조사가 의미는 국가의 파워를 자랑하기 위한 작업입니다. 비록, 세상의 권력에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향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다윗자손에서 메시야가 나온다는 예언의 성취를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여기서 반전은 하나님의 일은 절대로 우리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힘에 끌려가는 마리아와 요셉같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함께 동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믿음을 가진다는 의미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질서를 확인하고 그 질서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중보기도
기도 덕분인듯 합니다. 수련회 기간에 눈 예보가 사라졌습니다. 평안하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키장에 눈이 없어서, 다른 스키장을 알아봐야하는 번거러움이 생겼습니다. 눈이 와도 걱정, 안와도 걱정이네요.
청년들이 잠시 트리니티 채플에서 모임을 갖지 않습니다. 방학중에 숨을 고르고 다시한번 발돋움 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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