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때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 (렘33:15)
대림절의 기다림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고요함과 소박함을 배경으로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요함은 기다림이라는 단어에서 그려지는 이미지일테고, 소박함은 다가올 엄청난 사건에 비해 조용하고 절제됨에서 전해지는 이미지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런 고요함과 소박함을 배경으로 기다림을 보내는 시간은 긴 고요한 적막을 깨는 첫소리가 무었일까 기대하게 하고, 소박함속에서는 온 세상을 위한 사건임에도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우리곁에서 일어날 사건을 기대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해지는 첫소리는 “그 때”, “그 시각”에 마침내 의로운 가지가 돋아나, 세상에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는 순간이 올것이라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에 보면 “다윗에게서 돋아날 의로운 가지”를 “다윗가문에서 나오는 왕손”으로, “공평과 정의를 실현 한다는 표현은”, “올바른 정치를 펼것이다.”로 번역했습니다. 긴 기다림 속에 마침내 고요함과 소박함을 깨고 드러나는 것이 의로운 사람이(왕이) 나타나 세상에 올바른 정치를 펼치는 것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직설적인 번역이지만 맘에 듭니다. 실제로 올바른 정치를 펴기만 해도 우리들이 몸 담은 이 세상은 달라지고 새로워 질것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은 늘 이것을 꿈꿔왔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또 주목할 것은 “한 의로운 가지”입니다. 다윗의 여러 자손 중에 “단 하나”의 “의로움”이 나타난다는 건데, 왜 “단 하나”만 나올것인가?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 많은 세대 중에 딱 하나. 왠지 희소성이 느껴지는 “단 하나”이지만, 깊이 묵상해보면, 이 “단 하나”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분”이신 예수님이 “한 번”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들은 더 이상 속죄제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한번의 사건” 이 우리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습니다. (히10:14) 그러니 이 한번의 사건은 우리에게 영원한 공평과 정의를 이 땅에 세워주는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요함과 소박함으로 대림절을 맞이하면서 드는 생각은 “한 의로운 가지”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이미 오셨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앞으로 오실 그분을 기다리는 마음도 함께, 우리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들이 모아 졌으면 합니다. 한번의 사건으로 우리들은 공평과 정의를 세울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대림절기"를 보내면서 우리들이 가다듬을 마음은 이 기다림이 바로 우리들의 믿음과 헌신을 통해 “한번의 사건"으로 세워진 공평과 정의를 이땅에, 우리교회에 실현하기 위한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묵상
“의로운 가지”가 공평과 정의를 실현한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기다리는 주님은 “공평과 정의”와 어떤 관계일까요?
기다림은 “온세계, 모든 사람"을 위한 기다림을 기억해야합니다.
중보기도
박두진 권사님이 어제부터 병원에서 치료중이십니다. 앞으로 골수이식을 할지, 긴 항암치료를 할지를 결정하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기도해주세요.
대림절 묵상을 통해 주님의 오심을 더 간절히 기다리는 시간을 우리에게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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