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장, 6월2일 목요일



그가 그 제물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에게 가져 오면, 제사장은 기름으로 반죽한 밀가루에서는 가루 한 줌을 걷고, 향은 다 거두어서, 그 제물을 모두 바치는 정성의 표시로,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살라야 한다. 이것이,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나 주를 기쁘게 하는, 살라 바치는 제사이다. (레위기 2:2)

오늘 레위기 본문은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레위기는 가축을 드리는 것을 번제, 곡식을 드리는 것은 소제라고 이야기합니다. 번제와 소제의 질적인 차이를 가인과 아벨 사건을 통해 차별적 이해를 가지는 분들이 있지만, 당시에 곡식의 값어치도 가축의 값어치와 비슷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러니 제사의 가치를 단순히 제물의 가치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중요한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다양했고, 모두다 태워서, 연기를 내게 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흠향하시면 예배를 잘 드린 것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는 연기에 집착합니다.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이 보이도록 태우는게 제사장이 하는 역할을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바람에 연기가 날리는 모양이 아닌, 바람이 없을때 하늘로 닿을듯 올라가는 연기 모양을 내며 제물을 태우는 것이 제사장의 능력이라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흠향하신다는 것, 즉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잘 받으면 이런 모양일 것이라고 짐작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짐작에는 몇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지금이야 바람, 기압, 그리고 온도등 다양한 변수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하늘에 계시다는 전제가 제상의 모양, 그리고 제사장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이후에 하나님은 어디든 계신분, 그리고 광야를 행진할때 법궤에 계신 분으로 하나님이 하늘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라는 신앙고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한 고백같지만, 매우 파격적인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연기의 모양으로 제사장의 능력, 잘된 예배를 평가하는 것이 무의미해졌고,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폭넓어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폭이 어떻게 넓혀지는가?”를 기록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점점, 그 이해의 폭은 확장되어지는데,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이해하는 하나님의 이해의 폭이 넓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성숙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일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들이 소망해야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고백이 확장되어져가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 이것이 제사를 드리던 이스라엘이 고백하는 확장된 하나님의 이해를 통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묵상

하나님이 지금 어디에쯤 가둬두고 계신가요? 내가 생각한것보다 더 크다고 생각지 않으시나요?


중보기도

  1. 한영화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많이 쇄약해지셨습니다.

  2. 한국방문중인 그리고 계획중인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졸업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잘마무리한 여정을 축하하고, 새롭게 시작되는 여정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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