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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장, 4월3일 월요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막 3:35)

소문은 여러가지 상상을 하게합니다. 예수의 소문은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사실이 아닌 누가 조작한 것이라고 들렸고, 누군가에게는 귀신들린 것이라고 이야기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열두제자를 부르시는 것으로 선생으로서의 자리를 든든히 합니다. 기적을 경험한 자들에게는 절대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를 주지만, 소문을 잠재울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하려고 소문을 조심해 하시고, 어떤이들은 이런 예수를 죽이려고 했을까?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자를 고치실때, 이를 지켜본 이들 중에 예수를 죽이기 위해 모의를 합니다. 이유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고, 거침없는 예수님의 행위에 그대로 두면 불안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왜 이정도가 사람을 죽일 정도였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의 위험성중에 하나는 배타성을 간직한채 순수주의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바른 신학, 바른 신앙, 자기들 것이 최고라는 것의 인식, 내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은 다른것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거나, 심각하면 상대를 제거하려는 의지까지 생성합니다.


마가복음 3장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반발 보다는 자기들이 쥐고 흔들었던 종교적 권위가 흔들린것에 대한 복수들이 읽혀집니다. 예수님은 아픈 사람을 고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복음을 통해 전하시는데, 그것은 기존의 종교지도자들의 입지를 위협하는 것처럼 그들은 느꼈던것 같습니다. 변화보다는 안주에 무게를 둔 삶이 죽음 혹은 귀신들린 것이라는 비난으로 표현되어집니다.


묵상

우리들이 경계해야할 배타적인 태도는 무엇인가요?


중보기도

1. 장명숙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속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사순절 작은실천

용서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 용서하기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시편23:5)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시대가 달라도 언제 어디서나 노래가 들립니 다. 기쁠 때도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슬플 때도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사람 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좋은 선물이며 인간 이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좋은 선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목소리, 모든 음이 노래가 되는 것은 아니며, 모든 노래가 아름 다운 것도 아닙니다. 노래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각기 높이가 다른 음들의 어 울림, 곧 화음(harmony)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울림’은 ‘다름’을 전제한다는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음이 똑같이 하나뿐인 노래가 있다면 어떨까요? 노래라기보다는 지루한 단음의 연속이거나 거슬리는 소음일 뿐이겠지요. 화음을 위해 필수적 인 것은 다른 음, 다양한 음입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생각 방식, 다른 생활 방식은 삶의 노래를 더 깊 고 풍요롭고 아름답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다른 음을 경청하고 존중하며 화음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선물, 우리의 찬송입니다.

어제 저희 집에 교우들이 방문했습니다. 예전 즐겨부르던 노래들을 주고받으며 잠깐의 추억속에서 시간을 더듬었습니다. 시간은 빠르고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는 이야기속에 우리들의 노래는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다양한 인생속에 우리들이 이렇게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는 노래가 되어서 아니면 어떤 유명한 노래를 따라서 기억될 것입니다. 시편 23편은 바로 그런 시편입니다. 긴 시간 다윗이 만들었다는 이 노래는 우리들의 삶에서 불려졌습니다. 그런 노래를 우리는 교회를 통해 계속해서 부를 것이고 기억될 것입니다.


묵상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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