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보내신다는 특사는 말라기를 가르키는 언어적 유희의 표현입니다. 신적 선구자적 역할을 하는 천상적 존재를 가르키는 것으로 복음서에 세례요한과 같은 위치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2절에 “그가 이르는 날", 이 날을 여호와의 날이라는 표현으로 오늘 본문이 미래지향적인 소망이 담긴 것임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불특정한 하나님이 마련하신 시간에 금을 연단하 듯 정결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깨끗하게 만드시는 새로운 날이 올것을 말라기는 선언하고 있습니다.
5절에서는 이 새로운 날을 마련하기 위해, 심판이라는 법정용어를 사용함으로 그날에 마련될 심판은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이 직접 재판관으로 임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심판을 받은 대상은 “점치는 자" 즉 이익을 위해 이교적 비술을 행하는 자를 가르키는 것이고, 과부와 고아, 나그네 그리고 하나님은 경외하지 않는자는 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 해야할 책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부터 시작되는 이 명령은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것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할 것을 반복적으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6절에 하나님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분이라는 말씀으로 모세의 율법으로 부터 전해지는 마땅한 행위는 당연히 지속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변치 않지만, 늘 변덕스러웠던 것은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이런 변덕스럼움을 향하 하나님이 친히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7절과 8절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 도둑질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십일조의 개념은 단순히 헌금의 의미가 아니라, 구약전체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가장 합리적인 수단 중에 하나입니다. 십의 일조는 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지파와 과부와 고아 나그네,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으로 당시에 가장 합리적인 사회 보장제도를 뒷받침하는 것이었습니다. 말라기는 이런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않는 것을 “도둑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 십일조 헌금을 반드시 드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십일조의 진정한 의미를 오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누군지 모르지만, 어렵고 고난 받고 있는 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생존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는 자를 분별하는 것을 악인과 의인으로 구별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관점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세워가기 위해 노력하는가? 무관심하는가?
묵상
온전한 십일조의 개념이 무엇인가요?
중보기도
박두진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박두진 권사님이 장에 궤양이 생겨서 치료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주에는 재활치료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잘 견뎌내도록 기도해주세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아프카니스탄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선교의 열정을 세워가는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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