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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8-13, 1월19일 목요일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주는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바울의 이 고백은 사실 가장 비천한 상태에서 고백한 내용입니다. 뭔가 드러나는게 있어야 설득이 될텐데, 감옥에 있는 바울의 이 고백이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을지 상상이 잘 안갑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결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때문입니다.


20세기는 답이 정확해야하는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 것에 열광하고 그런것들을 높이 인정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기독교신앙도 딱 고백하는 대로 정확하야하고, 분명하기 이야기해야하는 시대를 거쳐왔습니다. 이런 분명함을 드러내는 시간은 최근에 들어 매력적이 않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문과 과정 그리고 이런것이다~! 라는 결과에 대한 질문과 “정말 그런가?”라는 고민에 부딪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흔히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 같습니다.


교육환경이 바뀌었습니다. 칠판에 적어주는대로 외우던 시대에서, 끊임없이 질문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로 바뀌었으니 당연한것 같습니다. 가장 이해하 안되는 것을 공부하는 학생중에 양자 역학 개념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을 들은 적이 있는데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예측하기 힘든 물리적 원칙들 (예전에는 예측 불가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퀀텀 점프라고 하는데, 이것을 인공지능으로 예측을 하는 것을 공부한다고 합니다.

이게 가능할까? 싶은데, 우선은 예측할 수 없는 현상을 인정하고 있다는 데 매력적입니다.


“내 능력 주는 자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라는 바울의 간단한 이 한 문장은 “내 능력주는 자 안에서라는 분명한 조건이 있습니다. 자칫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에만 마음을 쏟으면 예수를 믿는 것이 마치 전지전능한 능력을 얻는것처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능력은 주님이 주시는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이런 조건은 더불어, 예측하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필요합니다. 내 생각 혹은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다른 이들의 생각을 조정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삶으로 살아내는 실천으로 드러나지는 것입니다. 바울이 요청하는 풍족한 열매는 이런 삶을 통해 드러나는 열매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관통하고 지금까지 복음이 복음이 된 이유는 명제가 명확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능력”안에서 삶으로 드러난 “고백”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묵상

어떤 능력을 기대하며 살아가시나요?


중보기도

장명숙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어노인팅 집회가 있습니다. 2월3일 금요일 저녁 7시입니다. “친구 초청 잔치”같은 마음으로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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