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예상치 못하게 흘러갑니다. 블레셋이 애써서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는데 성공합니다. 그 과정을 경계에서 지켜보면서, 벧세메스의 사람들이 수레를 장작으로 만들고 끌고온 소를 재물로 번제를 드리는 장면을 보고는 돌아섭니다. 통쾌함이 몰려오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을 읽는 이스라엘 독자들은 하나님의 위대 하심을 찬양하고, 자신들이 가늠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에 탄복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온 법궤를 벧세메스 사람들이 열어보았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오만칠십”(어떤 사본에는 오만이 없고, 칠십만 있음)명의 벧세메스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재앙은 결국 이스라엘이 당한것입니다.
블레셋과 경계를 이루고 있던 벧세메스 사람들이 변방에 있다는 이유로 법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거나, 스스로 돌아온 법궤에 대한 경이로움 혹은 여러가지 이유로 법궤를 왜 열어 봤는지에 대해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법궤를 열지 말아야 할 것”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이 우연같은 사건이 재앙을 몰고왔습니다. 이 재앙은 곧 법궤를 기라여하림으로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블레셋이 당한 것은 법궤를 가볍게 본게 문제였고, 벧세메스 사람들이 당한 것은 지나치게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것이 문제였습니다. 잘안다고 생각하는 것 만큼 눈을 가리고 생각을 마비시키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묵상
잘안다고 성급하게 군 적은 없는가요?
중보기도
장명숙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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