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여기서 그날은 하나님의 마련한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카이로스적 시간의 공간 즉 하나님이 마련한 적당한 때, 약속된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그날"에 대한 기독교적 고백은 재림, 휴거 등 종말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마련한 시간은 “단련과 시험"이라는 단어에 녹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날에 샘하나가 터져서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죄를 씻겨준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바로 그 샘물임을 읽혀지게 합니다. 샘하나가 터지는 날, 우상과 거짓 예언자들의 심판이 함께합니다. 샘물로 구원받는 자가 있을때, 심판받을 자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7절에 등장하는 “칼"은 못된 목자를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집니다.
구원과 심판의 주제는 성경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주제를 움켜쥔 자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로 구원을 판단하지만, 이 판단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마련한 시간에 모든 것이 판결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에서 가장 조심스러운 것은 독점적인 신앙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믿는 믿음의 가치가 가장 뛰어나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이 마련한 시간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만족에 포장을 한 마음을 앞세운 천박한 구원관을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이와 비슷한 함정에 빠져있습니다. 그런 모습은 독선과 자기중심이라는 모양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 독사의 자식이라고 꾸짖었던 것처럼 교회를 이런 함정에 가둬두고 이해하는 분들은 온전한 구원의 여정에 함께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심판받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로 신앙이 있어도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판과 구원은 하나님이 마련한 시간에 결정되어집니다. 하나님이 마련한 시간은 마치 먼 미래, 종말에 우리에게 올것 같지만, 하나님이 마련한 시간은 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속에 존재합니다. 카이로스적 시간은 양적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질적인 시간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질적 개념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때인 것으로 믿고 사는 자에게 구원은 열려있습니다.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때에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판단할 수 없는 때에 허우적 대지 마시고, 하나님이 마련한 시간에 삶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묵상
지금 하나님의 때에 계신가요? 아니면 막연한 기다림에 계신가요? 혹은 기대와 소망을 상실하셨나요?
중보기도
박두진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가족들도 강건히 함께하기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9월 대면예배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속히 백신 맞는 숫자가 늘어나도록 기도해주시고, 백신에 대한 가짜뉴스에서 벗어나도록 기도해주세요.
Greenville 화재로 인한 피해를 후원하는 헌금을 드리려고 합니다. 기억하시고 이번주에 함께 후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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