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는 다리오왕 제 4년 아홉째달, 그리고 바벨론식 월력인 기슬래월 사일이라는 시간의 서술로 스가랴가 환상을 본지 2년이 지난 세월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시간을 기원전 518년 12월7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새성전이 완공되기 2년전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성전재건이 가시화 되면서 여러가지 변화들이 오늘 본문에서 보여줍니다. 우선 벧엘의 대표단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기 위해 스가랴를 찾아옵니다. 3절에 보면, “계속 해온대로 다섯째 달에 금식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묻습니다. 이 금식의 의미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것을 기억하며 슬퍼하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스가랴는 오히려 질문으로 던집니다. “진정으로 금식한 적이 있는가?” 그 응답중에 일곱째달을(5절)을 언급하는 것은 느부갓네살 왕이 총독으로 임명한 그다랴가 암살된 사건을 기억하며 금식을 했는가에 대한 물음이 함께 던집니다.
스가랴가 던진 질문은 단순히 꾸짖음의 차원이 아니라, 늘 종교적 절기에 먹고 마시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는지, 자기들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고, 시간이 제법 지나고 곧 성전이 재건되는 상황에서 이 금식을 계속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물음 자체가 진실하지 않다는 생각때문에 그런듯 합니다.
이어지는 본문에 스가랴는 진실한 재판, 곧 정의와 당시 약자인 과부, 고아, 나그네와 궁핍한자에 대해서 여전히 무관심한 것들을 들춰서 “하나님께 진실한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금식보다는 회개와 겸손이 더 중요함을 가르쳤던 예수님처럼 (눅18:9-14) 스가랴는 금식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보다는 함께하는 고난받는 자들 과부와 약한자들, 고아 나그네, 궁핀한자들을 온전히 살피지 못하는 것이 심각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금식이 진실 되었다면 당연히 이들을 돌보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들을 잘 돌보는 것이 곧 금식을 잘 지키는 것보다 낮다는 게 스가랴가 전하는 예언입니다.
교회도 늘 이런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형식적인것은 철저하나 진실한지에 대해서 살펴야 하고, 또한 우리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야합니다. 21세기 바리새인은 다른 이들은 돌보지 않고, 하나님 앞에 철저한 형식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돌이켜 우리의 모양을 살피면 우리들이 어디에 서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진실하게 하나님을 고백하는 자는 세상을 품는 하나님의 뜻을 이땅에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묵상
그리스도인이신가요? 살피지 못한 것들이 있는지 한번 돌아보세요.
중보기도
박두진 권사님과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이경철 권사님과 유족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새학기를 시작해서 대면으로 수업을 듣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에서도 꿈을 꾸고, 삶의 방향을 잘 세워갈 수 있도록, 좋은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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