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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5편-27편, 5월12일 목요일



주님이 나의 ,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시편 27편:1)

살면서 두려운 존재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대부분 실체적 존재라기보다는 가상적 존재들이 더 많은 듯이 보입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면서 미래에 막연한 두려움이 지금 우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로 등장하고, 예상치 못한 전쟁이나, 이로 인한 물가와 경제적 개념의 두려움들이 우리를 움켜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대마다 경험되어지는 두려움이 달라지는데, 아무래도 사람들의 관심에 따라 두려움도 바뀌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외에 두려운 존재가 세상에 없다고 하는데, 깊은 신앙의 고백으로 들리긴하지만, 자칫하면 자신외에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두려운 것은 사람이 자기 중심적으로 변할때입니다. 사람을 의지 하지 말라고 하지만, 어디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삶들을 보면, 사람들의 도움이 없지는 않았고, 자수성가가 아닌 어느 누군가의 희생으로 제가 사는 삶이라고 생각하다보면, 사람이라는 존재를 단순하게 보기에는 복잡하는 생각이 들어서인 듯 합니다.


공동체에 기대어 살다보니, 이기적인 행위 혹은 희생없는 삶에서 목사는 방향을 잃어버릴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교회라고 부르는 곳은 희생공동체입니다. 신앙이라는 이미 희생의 산물을 품고 사는 우리들이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고는 교회는 세워지지 않기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세워진 교회”라는 의미도 희생을 통해 세워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공동체 안에서 자기중심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분이 계시다면 결국 교회는 희생공동체가 아닌 이익 공동체로 변질되어버릴지 모르기때문에 두렵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국 이후에 갑자기 바뀌어 버린 환경으로 음식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는 분이 밤늦게 연락이 와서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양동이를 끌어안고 음식은 물론 모든 물을 토해내는 분의 등을 두드리면서, 이분이 하시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목사님, 제가 죄가 많아서 그래요~!” 어쩌할줄 모르는 딸이 멀찍이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권사님!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해서 그래요! 하나님이 벌주는 분이 아니라 사랑하고 치유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해보세요~!” 상투적인 말 같지만, 기도하면서 이분의 두려움이 사라지면 곧 쾌차하고 일어나실 것 같다는 생각에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평생을 살아온 환경에서 전혀 다른 삶을 마주했으니 얼마나 걱정과 근심이 가득할까? 하는 마음에 안타까웠습니다. 나오는 길에 따님에게 제 연락처를 주면서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왔습니다.


교회는 희생공동체입니다. 희생을 통해 우리들의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주님,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그 하나만 구하겠습니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라는 시편기자의 고백에서 우리들이 주님안에 단단해지는 것은 복잡한 것이 아닌 단순한것, 즉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가능했으니, 나도 이 같은 삶을 통해 살아가겠다고 고백할때 우리는 진정한 평화의 길위에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묵상

지금 가장 두려운게 무엇인가요?


중보기도

  1. 김명숙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얼마전에 LA파사디나 근처에 클레몬트에서 이사오셔서 교회에 오기 시작하셨는데, 음식을 잘 드시지 못하셔서 고생하십니다.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장명숙 집사님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세요.

  2. 다흰 자매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건강하게 자녀를 출산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3.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이 지역에 그리고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시대에 합당한 교회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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