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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8편-30편, 5월13일 금요일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내리신다.(시편 29편:11)

사람의 가장 고약한 습성중에 책임소재를 위해 소위 총대를 메는 사람을 찾는다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한사람이 책임을 지고 모든 것을 떠안는다는 것은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래서 꼬리짜르기라는 말로 사건을 축소시킨다. 혹은 가장 만만한 사람에게 책임을 떠 넘기는 식의 행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왜 가장 고약하다고 이야기했냐면,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세운 기준과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삶을 마음대로 재단할 수 있다는 착각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착각의 근원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 대로 다른 삶의 삶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시편이 우리에게 주는 큰 자양분은 모든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됨에 대한 고백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남에게 넘기지 않고, 하나님이 왜 이런 일들을 보이시는 걸까 진지하게 묻는 장면은 우리들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방에서 성경공부를 준비하는데, 딸아이가 들어와서는 학교 가기 싫다고 이야기합니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인가 귀를 기울였더니, 그냥 가기 싫다고 합니다. 순간의 심각함을 표현한 제 표정에 놀랬는지 얼른 방에서 나가는 아이를 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나도 학교 가기 싫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잠깐 왜 학교에 가기 싫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친구는 좋지만 학교는 싫었던 것은 학교가 주는 제한적인 틀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무언가를 배우고 습득을 하는 공간은 좀더 빡빡해야 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 안에서 뭔가 깊은 배움은 사실은 학교라는 시스템보다, 학교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사건들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편기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근원이 시작된다는 고백을 하는 이유는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을 세워가는 일이며 결국 고난이든 축복이든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고백으로 가능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나의 바른 관계라는 것은 직접적인 하나님의 선물을 기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 기적같이 느껴지는 것, 너무 막막하게 내던져진 경험들이 함께 섞여서 “나”라는 정체성을 만들어갈때, 그 순간 순간 느껴지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 세워져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멀리있지도 않은 하나님의 손길.. 오늘 하루도 우리성격과 다르게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묵상

하나님이 지금 어디계신가요? 급한성격은 멀리에서 차부한게 기다릴줄 알면 가까이에서 경험되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중보기도

  1. 소망회 회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토요일에는 새벽예배가 있습니다. 줌으로도 진행됩니다.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3.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전쟁의 피해가 이제는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도 상당한것 같습니다. 자존심때문에 전쟁을 지속하는 무지함을 부셔내고, 평화가 속히 오기를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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