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좋은 말도 하지 않았더니, 걱정 근심만 더욱더 깊어 갔다. (시편 39:2)
대부분의 고난이 어디서 오냐하면 관계에서 옵니다. 관계의 문제로 화가 나가기도 하고, 반대로 화를 주는 당사자가 되기도 하고, 세상이 꼭 내 중심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관계는 늘 내 중심으로 변화가 있고, 그 안에서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관계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관계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말보다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고난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자신이 어떤 결정을 하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집니다.
말을 안하고 침묵을 하면 편안할 것 같지만, 좋은말도 하지 않다보니 더 괴롭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고난을 피하기 위해 관계를 하지 않으면 좋을 것 같지만, 사실 이 피함을 통해 고난은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로부터 받는 고난은 줄어들겠지만, 스스로를 괴롭히는 새로운 고난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모든 관계를 긍정적으로 보는 저로서는 관계에서 고난이 온다는 생각보다는 약간의 피곤함이 더할 뿐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계가 인간의 관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을 관계로 이야기할 수 있으니, 대부분의 고난이 관계에서 온다고 말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스를 통해 다른 나라의 전쟁도 가슴을 막막하게하고, 이런저런 사건과 사고소식에 안타까워하는 것도 그렇고, 가끔은 직접적으로 내 삶에 들이닥치는 고난도 결국 관계라는 큰 카테고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교회에서 예배후 애찬을 나누는 한 테이블에 광주에서 장교로 군생활하셨던 분, 광주 전남도청 금난로에 사셔서, 5.18당시에 큰형의 행방을 몰라 부모님이 어쩔줄 몰라했던 것을 기억하시는 분, 조카가 광주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분들과 함께 식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일부러 약속을 하고 앉은 자리가 아닌 그 자리에서 역사적 상처와 아픔을 비빔밥과 함께 넘긴 적이 있습니다. 이 또한 관계를 통해 경험한 고난이겠죠.
시편 37편에서 다윗이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내게 닥친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이를 비웃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결국 하나님 앞에 구원받는 다는 것은 이런 부딪힘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선을 악으로 갚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고 하나님의 손길을 소망하는 것이 구원받은 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고백하는 자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묵상
지금 삶의 자리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는 무엇인가요?
중보기도
장명숙 집사님이 오늘 오전 10시에 수술을 받으십니다. 모든 치료가 잘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북가주 한인연합감리교회 코커스에서 개척한 “쿠퍼티노 예수 사랑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든든히 잘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청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학업으로 이주하고, 직장으로 이주한 청년들을 위해, 그리고 잠시 교회를 떠난 청년들을 위해, 9월 새학기에 다시 돌아오는 청년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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