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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1편 64편



하나님께서 한 가지를 말씀하셨을 때에, 나는 두 가지를 배웠다. '권세는 하나님의 것'이요, '한결같은 사랑도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주님,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시편 61:11-12)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은 우리들의 인식이 세계를 매우 단순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로 사람 전체를 판단해버리는 것은 선입관이라는 틀속에 인식이 고정될 수 있고, 결국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으로 그 한계에 부딪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것은, 그 만큼 뛰어난 사람을 보면 감탄을 하는 속담입니다. 보는 것과 가르치는 것의 인식의 차이는 이렇게 크게 다른데, 순간적인 감정과 상황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들면 안되겠죠.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하나를 말씀하셨는데, 두가지를 배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권세는 하나님의 것이요.”, “한결 같은 사랑도 주님의 것”


첫번째는 겸손한 고백이라는 의미에서 쉽게 와 닿습니다. 실제로 지금을 살아내는 우리들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고백은 여기서 출발하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도 모든 권세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으로 신앙의 척도를 알 수 있습니다. 곧 겸손이 어쩌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고백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한결 같은 사랑도 주님의 것”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한결같다고 표현하는 것은 현실에서 고난을 겪는 이들에게 이 한결 같은 사랑의 부재를 경험할 때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주어집니다. 사랑의 매, 사랑의 고난이란 이름으로 답할 수 있지만, 분노의 축복, 심판의 승승장구라는 말이 없듯이, 사랑의 매와 사랑의 고난이 쉽게 와 닿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편기자가, “한결 같은 사랑도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한결 같다”에 무게를 두면 이해가 갈 것 같습니다.


우리는 늘 영원한 것을 품고 사는 것 같지만, 시간은 우리를 느슨하게 하고, 잃어버리게 하고, 사랑이라는 것이 곧 미움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늘 우리들은 불안정한 감정을 소유한, 늘 변덕인 심한 마음 상태로 살아갑니다. 아침에 좋았다가 저녁에 불안해 하는 모습속에 우리들은 늘 불안정한 삶을 사는 자라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래서 사람 의지 하지 말고, 하나님 의지하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는 불완전함에 기댈 것인가, 완전함에 기댈 것인가? 에 대한 충분한 경험이 있기때문에 나온 이야기 일 것입니다.


시편기자의 인식은 깊은 경험과 오래된 하나님과의 동행을 통해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를 듣고 두가지를 깨달았다는 것은 단순한 하나가 아니라, 깊은 하나,즉 그 하나를 오랫동안 묵상하여 깨달은 두가지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깊은 시간을 통해 영글어가는 것입니다. 성도의 관계도 깊은 시간을 통해 영글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짧은 시간, 관계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는 오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우리들이 살아내야 하는 신앙생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겸손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을 깊이 깨달은 시편기자는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는”것을 통해 구원을 소망하는 것을 나누고 있습니다.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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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흰자매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출산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3. 긴 여행(한국등)을 하는 교우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건강히 잘다녀오도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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