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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0편72편, 5월31일 화요일



1. 주님, 너그럽게 보시고 나를 건져 주십시오. 주님,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2.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수치를 당하게 해주십시오. 내 재난을 기뻐하는 자들이 모두 물러나서 수모를 당하게 해주십시오. 3.깔깔대며 나를 조소하는 자들이 창피를 당하고 물러가게 해주십시오. 4. 그러나 주님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승리를 즐거워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고 늘 찬양하게 해주십시오. 5.그러나 불쌍하고 가난한 이 몸, 하나님, 나에게로 빨리 와 주십시오. 주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나를 건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지체하지 마십시오. (시편 70)

누군가가 나를 너그럽게 대한다는 것은 든든하고 기분좋은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 너그러움에 고마움도 있지만, 여유가 있어서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말로만으로도 이렇게 느껴지는데, 너그러운사람과 함께 동행하는 것은 적어도 스트레스 없는 편안함이 가득할것 같습니다.


반대로 너그럽지 않은 사람과 동행하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답답함이 몰려옵니다. 매번 원리원칙에 마치 세상원칙은 자기가 다 소유하고 권리를 누리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데 서슴없이 사용하며 그것이 바로 자기의 힘이라고 여기는 태도는 단기간에 효율성이 높은 결과를 만들어 내겠지만, 긴 시간을 동행할 조직을 세우기에는 힘들것 같습니다.


너그럽다라는 표현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시편기자의 고백은 기존의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파격적인 선언입니다. 신을 유일하게 인격화하며 고백하는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그 만큼 친밀하게 신을 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고백을 통해 진정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세워가려는 노력이 신앙안에 담겨있기때문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내신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신적 고백은 저 멀리에서 우리를 다루시고 엄격하게 대하시는 분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너그럽게 우리와 동행하는 아버지의 이름, 혹은 어머니처럼, 혹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이미지로 하나님이 우리 삶에 동행하시는 것을 고백하는 당시 고대근동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신적 고백이 가능한 것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너그러우시니, 모든 것이 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못나게 굴어도 그들을 붙들어내시고, 예언자들의 목소리로 확인하는 무모함에 빠진 이스라엘이 여전히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도 그렇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신, 케노시스의 고백은 너그러운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과 일치하는 사건들을 경험하게 합니다.


삶의 판단이 어려워 막막함으로 연결되는 시간을 통과할때가 있습니다. 그 시간에서 느껴지는 어려운 감정들은 결국 자기 홀로 고독하다고 느낄대 더 커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을 너그럽게 대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고백은 경직된 삶을 좀더 유연하게 그리고 막막함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한발짝을 내딜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너그러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니, 누군가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 아니겠습니까?


묵상

너그러움을 경험한적이 있으세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누간가를 대한 적이 있으세요?


중보기도

  1. 중고등부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사춘기의 터널을 지낼때 든든히 기도하고 동행하는 분들을 통해 큰 자양분이 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더불어, 새롭게 시작하는 대학생활을 준비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질병가운데 있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정지영 집사님 어머니가 혈액암 투병중이십니다. 기도를 통해 회복될 수 있도록, 또한 이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가족들에게 평온함이 가득하도록 기도해주세요.

  3. 여선교회와 남선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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