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0장-11장, 10월10일 월요일



고아과부를 공정하게 재판하시며, 나그네사랑하셔서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당신들이 나그네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신들도 한때 이집트에서 나그네로 살았기 때문입니다.(신명기10:18-19)

평범한 외모에, 옷차림도 그리 특별하지 않은 분이 문을 두들기고 물어왔습니다. 퉁명스럽게 짧은 답을 한후 그분이 은퇴하신 교수님인걸 알았을때 무겁게 누른 가슴을 훓어내며, "사람이 눈으로 사람을 이해하면 결국 너도 그리 사람답지 않게되겠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마음은 아무래도 삶의 찌거기들을 눌러붙어 일어난일 같습니다. 예전에 대학원에서 조교로 있을때 경험한 일인데,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여전히 사람을 사람답게 보지 않고 사람을 겉치레에 판단해 버리는 세상의 찌꺼기가 내 마음에 눌러 붙어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그때마다 누군가도 나를 이리 보겠구나 싶어서 인지 가슴을 두드려 되도록 배설물로 보내려는 의지를 담고 있지만 어지간해서 그때 그 상스럽고 불경스러운 마음이 가시질 않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고아와 과부는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때 고아와 과부는 잦은 전쟁으로 어쩔수 없이 동네에 이웃 가까이에 있던 아픔의 상징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광야를 배회하고 갑작스러운 전쟁을 치러야했던 이스라엘에게 고아와 과부는 남의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내 가족과 같이 느껴졌을지 모릅니다. 나도, 혹은 내 아이도 이리 될 수있지 않을까? 이런 불안감이 공동체를 휘어감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은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과 같은 의미있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공동체가 이들에게 무관심하게된다면 결국, 공동체 자체에 큰 결함과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겠죠.


여기서 등장하는 나그네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저 스쳐가듯 인연없듯 지나칠 수 있겠지만, 성경은 그들에게 먹을것과 입을것을 주고 돌볼것을 이야기합니다. 나그네 심정은 나그네가 아는것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길을 나선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최종적인 결단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나그네는 물이없는 곳을 향해, 혹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광야로 감히 한걸음 한걸음 가야하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겠죠. 이런 이들을 만났을때 돌보는 것을 성경은 중요하게 다룹니다. 그러니, 오늘날 누가 과부고 고아인지, 그리고 나그네 인지를 살펴야합니다. 이시대에 나처럼 아픈자들, 혹 나도 그들과 같은 자리에 있을지 모르는자들, 마지막 생존을 위해 어렵게 길을 떠나는 자들 그리고 여전히 길위에 있는 자들을 위해 우리들의 마음 열고 그들을 품어야 합니다.

갑자기 해고된 노동자일 수 있고, 전쟁을 피해 피난온 난민일 수도 있고, 플라스틱에 생명을 위협 받는 바다생물일 수도 있고, 하루벌어 하루 먹어야할 삯을 잃어버린자일수도 있고, 높은 철탑에서 자기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외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들을 그렇게 살게 방치하는 것은 마치,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는 온갖 인생의 찌거기에 오염된 병든 마음, 병든 눈을 갖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긴다면, 이 말씀을 붙들고 이 말씀을 따라, 가슴을 열고 마음을 열어 이 시대의 과부와 고아 그리고 나그네를 살피는 일에 게을리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묵상

나그네가 되어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중보기도

  1. 한주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2. 교회학교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질병가운데 있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조회수 62회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