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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장, 10월3일 월요일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보아라, 내가 시혼과 그의 땅을 너에게 주었으니, 너는 이제부터 그 땅을 점령하여 유산으로 삼아라' 하셨습니다. (신명기 2:31)

금새할 것 같아 시작한 일이 예상보다 시간을 훌쩍 넘기면 후회가 밀려옵니다. 만만하게 보고 시작했다면 그 후회는 커지고, 그래도 나름 마음의 준비를 했다면 그 시간이 아깝지 않습니다. 늘 모르고 시작한 일에 후회가 큽니다. 그런데 반대로 예상보다 일이 빨리 끝나면 기분이 좋습니다. 만족스럽고, 내가 능력이 있는 것 같아 괜히 으쓱합니다.


가나안땅으로 행진하던 이스라엘이 38년을 돌아갑니다. 이유는 불순종의 이유입니다. 이 불순종의 댓가는 출애굽의 1세대들이 가나안에 정착못하는, 모세마저도 들어가지 못하는 큰 댓가를 치르게 하고 결국 허락한 땅은 출애굽 2세들과 3세들의 차지가 됩니다. 이 여정에 대한 평가는 신명기는 명확하게 하나님 앞에 불순종했다는 것을 원일을 삼고 있습니다.


구약의 대부분의 주제는 순종이냐 불순종이냐 입니다. 종교적으로는 꽤 중요하지만, 이 원시적인 판단에 따라 하나님의 뜻이 뒤집히고 공동체의 방향이 결정되었다고 하니까, 신명기는 중요한 바로미터로 구약전체에 녹아져 있습니다. 애기서 순종과 불순종의 판단은 하나님이 그것을 정확하게 판단하신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했던 이스라엘이 해석한 내용입니다. 즉 돌아보니까, 생각해보니까, 이런이런 문제들이 있었다고 판단한것입니다. 이 판단의 방향은 결국 반성과 회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속성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정말로 판관처럼 사람들이 순종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지켜보시고는 순종! 불손종!을 외치실까? 이 도전적인 질문은 구약과 신약전체를 들여다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고백은 결국 우리들은 심판의 하나님을 우리들의 불순종에서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을 경험하며 고백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방향은 “사랑”이시다가 성경전체 녹아있습니다.

신명기는 이런 의미에서 매우 냉정하고, 특별하게 전하는 모세의 깊은 단금질과 같은 고백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상보다 길게걸린 광야생활은 예상 시간을 훨씬 초과했을뿐만 아니라, 세대가 바뀌는 시간을 지내야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합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목적도 사라지고 어쩌면 어떤 방향으로 공동체를 끌고갈지 희미해질수 있지만, 결국 가나안땅에 들어가게되는 것을 보면서, 40년의 광야생활은 이스라엘을 단단하게 단금질한것 같습니다. 시간이 오래걸려도 이들의 목적과 방향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별함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에 분주함은 우리를 목적잃은 허무함으로 몰고갈 수 있습니다. 처음의 열정, 기대와 소망이 사라지고, 그때 그때 부딪힘을 모면하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결국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잃어버리게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그 분주함을 뚫고 기억을 일으켜 세우는 특별함이 그 삶에 존재하도록 노력해야 가능합니다. 이스라엘은 적어도 불순종의 역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의 물줄기를 든든히 잡아주는 헌신하는 자, 희생하는 자, 노력하는 분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묵상

어떤 노력과 헌신이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할까요?


중보기도

  1.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소망회 회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질병가운데 있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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