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 동네를 잠깐 스쳐가는 목사님을 한번을 뵙기위해 오랜만에 우버를 이용했습니다. 왠만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 않거나, 대중교통은 이용하지 않으려고했는데, 일부러 저를 찾아온 목사님을 외면할 수 없어 우버를 이용했습니다. 잠깐의 시간동안 운전하는 분들(오고 갈때 만난분들)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들이 제가 궁금한가 봅니다. 직업이 뭐냐, 어떻게 여기에서 사냐는 둥, 아마 동네로 우버를 부르는 경우가 많지 않고, 거기에 영어는 서툰 사람이 제법 좋은 동네(?!)에서 산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한게 많았나 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교회의 배려로 살고 있고, 나는 목사라는 말에 뭔가 이해가 되었는지 환하게 웃으며 자기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상황을 판단하고 이해하려고 하면 충분히 본질을 들여다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3년은 지나야 사람을 깊이 사귈 수 있고, 오해도 풀릴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시간은 관계와 이해를 성숙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누군가에 대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은 신중해야합니다. 야고보서는 “말"을 조심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아마 교회안에서 말때문에 생긴 문제가 많았던것 같습니다. 지금도 교회의 대부분의 문제는 “말"에서 비롯되어집니다. 말을 쉽게 하는 것도 문제이고, 이 쉽게 던져진 말에 흔들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부분 말의 문제는 원래 내용보다 과장되거나, 거짓으로 포장되고, 혹은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이용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교만한 자보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야고보는 “더 큰 은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자에게는 말은 세상 어떤 것보다 무겁기 때문입니다.
묵상
말로 인해 어려움을 당한 적이 있나요? 혹은 말 때문에 시험에 든적이 있나요?
중보기도
박두진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매일 11시, 함께 중보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질병가운데 있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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