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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22장, 10월20일 수요일



이 땅의 백성은, 폭력을 휘두르고 강탈을 일삼는다. 그들은 가난하고 못 사는 사람들을 압제하며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다. (에스겔 22:29)

내 친구 “용정금”을 생각하면 긴 여운이 남습니다. 막 청년이 되었을 때, 친구 용정금은 강원도 인제에서 서울 친적 집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청년부에서 만나서 동갑내기 친구가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온 순박한 아가씨가 서울 깍쟁이들하고 지내려고 하니 마음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친구를 챙기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던 분위기를 읽었을때, 아마 그 친구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친구는 지치지 않고 늘 청년부에 함께하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교회에 더 이상 이 친구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얼핏 듣기는 했는데, 고향으로 다시 돌아갔을까? 잘 기억이 나질 않으니 대수롭게 여겼던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어쩌다 강원도 인제를 지날때면 이 친구의 이름을 기억했습니다. “내 친구 용정금이 인제에 살았었는데..”


시간이 한참 흘러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고 그런 시간이 왔을때, 어느 연합 수련회에서 내 친구 용정금을 다시 만났습니다. 홍천에서 결혼해서 살고 있다고, 근데 사는게 녹녹치 않아 많이 힘들었다고. 그날 밤 편지 한 장을 이 친구에게 남겼습니다. 다 담을 수 없는 문장으로 어릴적 미안함을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 데리고 홍천에 옥수수 따러 가겠다고 인사를 하고는 헤어졌습니다.


편지도 쓰고,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인사도 했는데, 여전히 내 친구 용정금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스겔을 통해 선포한 말씀중에, 우상숭배가 아닌 다른 죄로 인한 심판의 원인을 이야기합니다. 나그네를 학대하고 고아와 과부같은 어려운 사람들을 압제한 것이 유다백성들이 멸망하는 큰 죄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예언서의 거의 대부분의 내용중에 이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잘 돌보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업신여기고 하나님앞에 예배하기 위해 나온다는 것은 곧 위선을 떠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저의 위선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척 했으니, 말씀이 저의 민낯을 고발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묵상

여러분도 혹시 떠오르는 것이 있으세요?


중보기도

  1. 박두진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위드 코로나를 준비하고 있지만, 방심하지 않도록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11월부터 12세 이하 아이들이 백신을 맞습니다. 아무 문제없도록 기도해주세요.

  3. 청년부 수요예배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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