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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4장, 4월7일 수요일


부활절을 맞아, 소망회에 떡을 나누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

스룹바벨과 각 가문의 우두머리들에게 와서 말하였다. "앗시리아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을 때부터 이제까지, 우리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당신들의 하나님을 섬기며, 줄곧 제사를 드려 왔으니, 우리도 당신들과 함께 성전을 짓도록 하여 주시오." (에스라 4:2)

포로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이 "성전재건"이라는 노력은, 이스라엘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어제 나눈 것처럼, 포로기를 끝내고 돌아온 고령자들은 감격이었을 것이고, 새로운 세대들은 나라를 재건하는데 필요한 이데올로기, 혹은 율법의 회복을 위해 가장 우선 순위가 성전재건이라는 시각이 있었을 것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오늘 본문에 보면 앗수르의 통치로 인해 다른 민족과 피가 섞여버린 "거주민"들이 성전재건에 동참하고 싶어하는데, 스룹바벨과 각 가문의 우두머리들이 거절합니다. "당신들과 관계 없는 일"이라는 말로 단칼에 그들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긴 시간의 단절은 그 뿌리가 같은 사람들이지만, 함께 마음을 합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자들이 냉정한건지, 아니면 남아있으면서 아무것도 안한 자들이 게으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돌아온 자와 남은자들의 갈등의 조짐이 보입니다.


포로기 이후, 특히 에스라와 신명기 역사가의 관점은 "왜, 우리들이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을 받아, 나라가 망했는가?"에 대한 신학적 반성이 필요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문제가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음"이었고 그래서 성전을 재건하는 것을 제 1 원칙으로 세웁니다. 두번째는 "피가 섞이지 않은 순수 혈통 이스라엘"을 지켜내는 것이 강박처럼 이스라엘을 사로잡습니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에 청착한후에 지속적인 문제는 가나안 사람들과의 결혼이 문제였습니다.


이런 배경을 보면, 오늘 본문에 성전 재건을 함께하자는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좋은 뜻을 품고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이 복잡함을 넘어서, 하나가 된다는 의미는 굉장히 큰 결단과 성숙함을 필요로 합니다. 단순히, 늘 찬성과 반대가 존재했다는 씩의 삶의 자세보다, 원인을 잘 이해하면, 우리들은 더욱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묵상

너무 쉽게 선입관때문에 단절과 분열을 경험한 적이 없으신가요?


중보기도

  1. 박두진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미얀마에 평화를 미국에서 벌어지는 아시안 혐오와 차별을 이겨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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