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리고성과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아이성을 함락하는 것은 쉬운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스라엘이 패하고 맙니다. 일반적으로 얕잡아 보는 순간 겪는 흔한 경우입니다. 이에 대한 여호수아의 반응은 "차라리 요단 동편에 있었다면.."으로 이어집니다. 성경을 읽을때 당혹스러운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때, 내뱉는 문장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여호수아의 이런 탄식은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땅으로 가는 것보다, 아무 문제없이 평온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는 기본적 욕망에서 출발합니다. 여호수아 7장에 아간의 죄가 더 크게 돋보이지만, 여호수아의 이런 고백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상치 못한 일에 겪게 되는 어려움이 때로는 절대적으로 타자가 원인이라고들 생각합니다만, 실제로 만약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에만 머물렀다면 이런 고난과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에 저는 동의합니다. 그러니, 아간의 죄와 여호수아의 탄식은 같은 무게로 우리들이 봐야 합니다.
아간이 자신의 욕망으로 공동체를 어려움에 빠트렸고, 여호수아는 이런 탄식과 원망으로 목적을 잃어버린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 순간을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그러기 위해서 아간과 아간의 모든 것들이 돌에 맞아 파괴된 이후에 가능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에, 오늘날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의 면모는 아간의 욕망과 여호수아의 성급한 탄식이 함께 어울어져 혼란스럽게 보입니다. 이 욕망을 담아낸, 무리한 교회건축, 세습, 정치권과의 결탁이 만연하는 가운데 여호수아 처럼 그 순간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려는 성급함으로 복음의 빛은 세상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어느누구 이런 현실을 탄식하고 우리의 욕망을 꾸짖거나 침묵하는 것을 무표정하게 지내는 현실이 결국 우리를 돌에 맞는 파괴의 자리로 이끌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오늘 새벽 빗소리가 잠을 깨우면서, 예전에 이른 새벽에 교회 창에서 비친 눈부신 햇살이 떠올랐습니다. 갑작스러운 떠올림에 비와 햇살이 무슨 연관일까 멍하니 생각하다가, 아침해가 떠오르는 곳을 향한 교회의 스테인클라스를 통해 떠오르는 태양의 빛을 다양한 색깔로 화려하게 만드는 것처럼, 온몸으로 햇빛을 받아야 다양하고 아름 다운 색깔을 내는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짊어지고 있는 삶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삶이 내 삶처럼 느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내삶으로 받아내야만 바른길을 찾을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묵상
피하는 것에 익숙해지셨나요? 온몸으로 부딪히는 것에 마음을 쓰시나요?
중보기도
교회의 모든 부서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찬양팀, 찬양대(성가대), 교육부, 청장년부, 장년부, 여선교회, 남선교회 모두가 연결되어 교회라는 한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각 부서를 대표하는 분들 그리고 그안에서 늘 새로움이 감사가 기쁨이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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