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회모임을 뒤로하고, 교회로 달려갔더니,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여럿이 모였습니다. 9월첫주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영상팀은 영상팀대로, 찬양팀은 찬양팀대로, 음향을 담당한 형제는 음향대로, 영상을 부탁 받은 권사님은, 카메라를 몇개를 들고 최선을 다해, 우리들이 지금 드리는 온라인예배 준비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브리또 하나씩 저녁을 준비한것 외에는 이들의 수고에 감사와 기대와 최선을 다해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겠다는 마음을 가득 안고 돌아왔습니다.
8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남유다는 결국 바벨론에 멸망하고, 왕들은 포로로 끌려갑니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 마지막 유다왕들은 셋트로 모두 하나님앞에 악한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기하 기자는 유다의 멸망은 바로 왕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서지 못했다는 데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시드기야에게 하나님께 충성을 강제로 강요할 정도였으니 상황을 짐작할 만합니다.
바벨론도 결국 페르시아에 멸망하면서,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칙령을 발표하면서 포로들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갑니다. 역대기사가는 느브갓네살, 고레스 왕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협력한 왕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역사는 냉정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 어떤 역할을 그리고 어떤 여향을 미칠 수 있는지 살피고, 바른 교회,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노력할때 인것 같습니다.
어제, 예배를 준비하는 분들과 함께 브릿또를 먹으면서 한 청년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요즘 저의 또래들은 교회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 해요, 불합리하고,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행동이 틀려서요" 예언자의 목소리 같이 느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느냐는 복음을 위해 목숨걸고 전하는 것 보다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것이 우선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행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교회, 성도, 예배를 꿈꾸고 기대합니다.
생각해보기
요즘 한국 뉴스에 비치는 교회는 모습을(물론 일부입니다.)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시나요? 교회가 바로 세워지기 위해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노력할것이 무엇일까요?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죠, 어떤 마음으로 드리고 계신가요? 힘든데, 힘들지 않은척 혹은 슬픈데 기쁜척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바른 예배의 모습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 드리는 것이 바른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슬픔도, 기쁨도, 어려움도 하나님이 받으시고 위로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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