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진은 최영화 권사님 사진이고, 어제 사진은 최영주 권사님 사진이었습니다.-
역대기하에 등장하는 왕들은 어김없이 처음에는 괜찮은 왕이었다가, 교만해지거나, 다른 이유로 무너집니다. 끝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역대기사가는 이점을 냉정하게 지적합니다.
웃시아 왕도 처음에는 주님 보시기 바르게 일했지만, 왕으로서 승승장구할때, 결국 엉뚱한 짓을 저질러서 하나님앞에 범죄함을 일으킵니다. 왕의 역활과 제사장의 역활이 구분되어 있는데, 제사장이 하는 분향을 스스로 해버린것입니다.
역대기서는 역사의 평가에서 끝이 좋지 않은 왕, 이 들때문에 이스라엘에 비극이 왔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변질된 왕들의 신앙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등장하는 아사랴 제사장은 웃시야의 엉뚱한 짓, 곧 분양을 왕이 직접하겠다는 것을 막아섭니다. 아무리 강력한 정치세력이라도 하나님앞에 잘못한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습니다. 아사랴는 담대하게 왕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왕이할 역할과 제사장이 역할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처음과 끝이 일관성이 있는 사람은 신뢰를 받습니다. 그러니 중간에 변질 되었다는 것은 믿음의 부족했기때문에 일어난 문제이고, 믿음을 단지 그것을 믿으라는 단순한 명령에 복종만 할 뿐, 그 믿음을 단단히 세우기 위한 질문이 없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생각없이 그냥 잘 믿는 것이 신앙생활에 중요한것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잘 믿기 위해서는 늘 질문하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로 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역대기사가가 그것을 깨닫고, 늘 질문하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믿음은 무조건 주어진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고민을 통해, 믿음은 더욱 든든해져 갈 수 있습니다.
질문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든든해지면, 우리의 믿음은 더욱 성숙해지고, 일관되어져서, 마지막이 아름답게 그려질 것입니다.
역대기 사가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 것입니다. 일관됨으로 ,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동일한것.
생각해보기
우리의 신앙생활의 마지막이 어떻게 빛날 것 같습니까? 일관된 믿음안에 있을까요? 아니면, 흔들리는 조건이 여전히 남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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