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아사 왕 제 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스물두 해 동안 다스렸다. (열왕기사 16:29)
유명한 아합왕이 등장했습니다. 사실 아합이 유명한 이유는 엘리야 예언자의 이야기를 통해 알려진 북왕국에서 가장 우상숭배에 진심이었던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합의 부인이었던 이사벨은 악명이 높게 알려져있죠.
본문은 여로보암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악행을 저지른 왕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앞에 바로서지 못한 왕의 기준은 여로보암이고, 이보다 더 우상을 섬기는 일에 진심이 왕이 아합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전의 다른 왕보다 아합에게 크게 진노했다고 합니다.
본문은 갑자기 베델사람 히엘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 히엘은 여리고성을 재건했습니다. 여리고성의 기초를 쌓을때, 그리고 기둥을 세울때 아들 하나씩을 잃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예언한대로 이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가나안 정착을 진행할때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사건은 큰 믿음의 사건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중심에 있었고, 이렇게 무너진 여리고성을 다시 쌓는자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것이라고 여호수아가 말한예언이었습니다. 히엘은 그대로 그 징벌을 받은 것입니다.
아합왕의 등장과 여리고성을 재건한 히엘을 소개하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당시 아합왕때 북왕국(북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리고 출애굽의 신앙을 완전히 잃어버린, 자신의 세대에 필요한 것을 위해서는 상징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일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아합왕의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바로선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앞에 선다는 것은 영어로는 Surrender 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끔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하면서 여전히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강력하게 전하는 분들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때문에 교회와 기독교의 위기라고 진단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저에게는 불편합니다. 무슨권한과 판단으로 다른 목사들, 다른 교회 지도자들을 비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판단의 뿌리에는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듣지 않는 것 어쩌면 고지식한건데, 잘 포장하면 타협하지 않는 것이라고 자랑합니다.
이런 강력한 주장은 아합왕과 같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한 자와 맞닿는 부분이 있습니다. 극단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것을 듣지 않으려고 하고, (특히 엘리야 예언자의 예언) 이런 고집은 히엘과 같은 존재를 등장시키는 것입니다. 은혜로 무너진 성읍을 다시 쌓아 올리는 이 당당함은 결국 스스로 판단한 신앙의 오해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이와 비슷일들이 경험되고 있으니 말씀대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묵상
아합과 히엘은 무엇이 문제인가요?
중보기도
졸업하고 새로운 길을 가는 청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열린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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