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가까이 와서, 이스라엘 왕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리아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산의 신이지, 평지의 신은 아니라고 하니, 내가 이 큰 군대를 모두 네 손에 내주겠다. 이제 너희는 곧,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왕상 20:28)
어제 곧 선교사로 떠나시는 김두식 목사님 부부와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짐정리를 하면서 몇가지를 바리바리 싸시고는 나눠주시는데, 먼길 가셔야 하니 짐정리에 한창인듯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간단하게 가실 선교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본인이 자원한것도 아니고, 교단 선교국에서 필요한 자리라 파송을 받은 것이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예전에 신학교에서 선교학 시간에 배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선교라고 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인데, 막상 선교지에 가면 빵이 먼저인지 복음이 먼저인지를 구분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보고 배운거는 교회에서 설교하는 목회자의 모습이지만, 선교지에서 선교사는 모든 것을 다 배워야하고 모든 것을 다 할줄 알아야 하고 모든것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부터 책상에 앉아있는 목회보다 현장에서 교인들이 봉사하는 자리에 함께 땀을 흘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교회 옥상 방수공사도 해봤고, 교회를 개척하는 후배와 동료 목회자를 위해 교회 레노베이션을 하며 전기공사도 해보고 (한국은 그냥 됩니다.) 음향설치도 해보고, 도와달라는 곳에는 다 도우러 가서 이것저것 다해본것 같습니다. 미국에 오기전에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텃밭에서 옥수수를 심었는데, 거의 무관심 농법이었습니다. 그래도 잘 자라서 교인들과 함께 나눠먹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경험때문인지 미국에서 목회하면서, 고구마를 팔러 샌디에고까지 운전하고 다녀온적도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분이 늘 교회안에만 앉아있어서 목사는 세상 물정 잘 모를거라는 말에 제가 경험한것을 나누었더니,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고생이 아니라 삶을 살은거에요. 어디 저만 그렇겠어요. 다들 한 고생, 한 경험들 하셨잖아요.
아합이 시리아와의 전쟁에서 쉽게 이깁니다. 대적할만한 수준이 아닌데 시리아가 스스로 망가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산지에 터를 잡은 나라고, 시리아는 전쟁을 위해 산지로 치고 올라가야하는 형국입니다. 이걸 불리하다고 생각한 시리아가 평지에서 진을 치고 전쟁을 치렀는데 또 대패하고 맙니다. 아합의 전략이 뛰어나서 그럴까요? 사실 아합왕때 가장 번성했던것이 북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우상숭배에 진심이었던 아합이었는데, 전쟁은 하나님의 예언자, 즉 하나님의 손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결정된 전쟁에 아합이 생색을 냅니다. 시리아의 왕을 살려주고 마치 자신이 모든 권세를 누리듯 자신의 병거에 태우고 사람들 앞에 나타납니다. 겸손할줄 모르는 아합입니다. 결국 이어지는 본문에 이런 아합을 질타하는 예언자의 목소리를 목격하게 될것입니다.
아합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합만 그런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삶이 객관적이지 않고, 스스로에게 관대한 편이죠. 이런 관대함은 자칫 교만함으로 이어집니다. 문득 오늘 아합왕에 대한 본문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를 들여다 보는 거울처럼 읽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셨고, 함께하셨고 입술로는 그렇게 고백하면서 속으로는 내가 잘해서 그렇다고 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묵상
여러분을 생생하게 들여다 보이게 하는 거울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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