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백성들은 이 말씀에 복종하지 않았다. 오히려 므낫세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면전에서 멸망시키신 그 이방 민족들보다 더 악한 일을 하도록 백성을 인도하였다. (왕하 21:9)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열왕기서는 신명기 역사서입니다. 즉 모세의 율법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점검하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왕들을 역사적 재평가하면서 기록된 말씀이 열왕기상하입니다. 신명기 역사가 강조하는 것은 첫번째, 중앙 성소(예루살렘) 중심, 두번째 제의 중심, 세번째 우상이 아닌 하나님만 예배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아버지와 달리 우상을 섬기고 심지어 성전안에 우상을 세우는 악행을 저질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신앙생활을 목격하며 자란 므낫세가 북이스라엘의 아합왕 처럼 바알을 섬겼다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성전안에 우상을 세우는 짓을 열왕기하는 매우 냉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물줄기 속에 이해 못할 상황을 우리들은 경험합니다. 분명히 신앙생활을 잘 전수 받고 아버지가 한 기도를 아들이 이어서 할것 같지만, 전혀 엉뚱하게 유다를 끌고가는 므낫세를 보면서, 신앙생활은 부모의 몫보다 스스로가 주님을 깊이 만나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히스기야 이후에, 남유다는 급격하게 국제정세의 불안함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북쪽의 바벨론의 팽창과 남쪽의 애굽의 팽창사이에 남유다가 선택을 강요받았을 것입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는 믿음이 커질만도 한데, 므낫세는 늘어난 불안을 다른 신을 통해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데 그것을 경험하지 못하면 다른 신을 찾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불안함이 곧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다른 우상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이 경험하는 불안함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을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합니다.
긴 코로나 바이러스 펜데믹으로 사실과 다른 엉뚱한 것을 문제 삼기도 하고, 불안함에 갑자기 다른 삶의 모양을 갖추거나, 갑작스러운 변화에 열광적인 신앙에 심취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함께하시고, 우리의 예배는 늘 드려짐에도 불안함을 해결하기 위해 뭔가 더 자극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므낫세의 우상숭배는 불안함에서 온,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이 아닌 불신앙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므낫세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고, 이렇게 무너진 신앙은 요시야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합니다. 22장에서 부터 소개될 요시야는 므낫세의 손자로 할아버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하나님 앞에 훌륭한 왕으로 등장합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우상을 섬기는 것도 의아하지만, 므낫세의 손자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강화하는 것도 눈여겨 봐야할 역사적인 흐름인것 같습니다.
삶은 우리에게 주어졌고, 하나님이 늘 우리와 동행하지만, 순간순간 겪게되는 불안함이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늘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묵상
불안함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꿨었는지 그런 경험들이 있으신가요?
중보기도
박두진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교회학교와 중고등부, 청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소망회 어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받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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