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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3장, 7월22일 목요일




왕이 주님의 성전에 올라갈 때에,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과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어른으로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이 그와 함께 성전으로 올라갔다. 그 때에 왕은, 주님의 성전에서 발견된 언약책에 적힌 모든 말씀을, 크게 읽어서 사람들에게 들려 주도록 하였다. (왕하 23:2)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 우선, 온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마 그 장면은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장면들은 그동안 얼마나 유다가 우상숭배에 진심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산당을 폐하면서 아세라 목상을 부셔내는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가나안의 농경신이었고, 그 지역의 풍습에 따라 산당마다 바알과 아세사를 섬기는 산당들이 즐비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애굽의 태양신을 섬기는 산당도 있었고,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일은 물론이고, 암몬의 신앙인 밀곰을 섬기는 곳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부셔내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요시야는 노력합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백성들에게, 성전수리때 발견한 율법서를 읽어줍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지키도록 모든 백성에게 선포합니다. 사사시대 이후로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던 유다백성들에게 다시 유월절을 지켜내도록 요시야왕이 이끌어낸 것입니다.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결정적으로 출애굽을 할 수있었던 마지막 재앙이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지나갔다는 의미에서 유월절기를 광야생활을 시작하면서 지켰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억이 사라져버렸고, 요시야가 종교개혁과 함께 유월절 절기를 회복시킨 것입니다.


이런 요시야의 노력은 애굽의 느고왕의 침략으로 므깃도에서 전쟁을 벌이다 전사하면서 끝이 납니다. 북쪽의 이스라엘 남쪽에 애굽에 둘러싸인 유다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특별한 정치적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느고왕은 앗수르의 동맹을 핑게로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유다는 이 확장을 막아야하는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느고와 치열하게 전쟁을 치룬 이유는 앗수르와 동맹을 핑게로 유다와 전쟁을 치르려는 계략을 요시야왕이 잘 알고 있었고, 유다의 이런 전쟁이 곧 앗수르와의 평화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을 요시야왕이 잘 알고 있었기때문입니다.


요시야왕이 죽고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를 계승하지만, 아버지처럼 하나님 앞에 바로서지 못하고 예전과 같은 악행을 저질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아버지의 신앙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하는 이유는 요시야가 노력한 종교개혁의 결과에 대해 여호아하스가 볼때는 불만족 스러워서 그렇게 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결과를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하면서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한 여호아하스의 신앙이 가벼웠다고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끌려가고, 동생인 엘리야김이 왕이되지만, 애굽에 조공을 바쳐야하는 상황에 놓이게됩니다. 엘리야김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애굽이 빠꿔놓고는 조공을 받는 것으로 평화를 유지합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대한 아쉬움은 만약 느고왕과의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면, 유다는 더 깊이 오래, 하나님께 예배하는 백성으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긴 시간 불신앙이 익숙해져버린 유다백성은 요시야왕때에 되어서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할 수 있는지를 회복한 것입니다. 이런 과정중에 요시야가 전쟁에서 전사하자,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결과에 익숙한 신앙을 가진 유다백성들이 그리고 요시야의 아들 마저도 하나님을 멀리하는 일이 벌어지게되었습니다.


신앙은 고난이 다가왔을때 어떤 모양을 갖추냐에 따라 그 깊이와 성숙함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 이방신을 섬긴것은 곧 결과로 드러나는 신의 행위에 집착했었고,(농경신이 주는 농사의 결과물이 신의 관계의 모든 것이었다. 그러니 매년 농사의 성공의 여부는 이 이방신-아세라와 바알의 섬김으로 결정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신들을 섬기는 행위에 익숙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즉 이방신은 유다백성에게 편안한(인스턴트 같은)신이었고, 하나님은 까다롭고 쉽지 않은 그리고 늘 그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신앙은 불편함과 까다로움으로 더욱 성숙해졌을때 그 열매가 아름답다고 볼 수 있습니다. 쉬운 신앙은 없고, 날마다 풍요로움을 주는 신앙은 바른 신앙이 아닌 건강하지 못한 신앙생활을 이끌어냅니다.

묵상

요시야의 종교개혁의 내용들을 들어보면, 당시에 유다백성들은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린듯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요?


중보기도

  1. 박두진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소망회 회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산불이 일어난 지역이 있습니다. 기도해주세요.

  4. 청소년 수련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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