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가 잠시 내려앉았다가, 집 안 이곳 저곳을 한 번 거닌 뒤에 다시 올라가서, 그 아이의 몸 위에 몸을 포개어 엎드리니, 마침내 그 아이가 일곱 번이나 재채기를 한 다음에 눈을 떴다. (왕하 4:35)
성경에 등장하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은 다양한 의도와 이야기의 방향이 있습니다. 사망권세를 기시는 주님의 능력을 드러내 보기이기도 하고, 죽음 너머에 또다른 소망을 품으라는 부활의 소망을 가짐으로 지금을 살아내는 순간을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죽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가는 어머니의 행동은 갑작스러운 비극적인 상황에서 차분하게 어떻게 그 다음을 준비해야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즉 어디로 가야하고, 누구를 의지하며 어떤 마음으로 이 어려움을 마주할지를 차분하게 대처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수많은 왕들이 나열되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불신앙의 모습속에서 진주와 같은 믿음의 여인으로 등장하는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여자이고, 한 아이의 어머니입니다. 잠깐 등장하는 남편의 의지는 이미 끝난 상황에 희망을 붙들고 엘리사에게 달려가는 이 여인을 희망없이 만류하는 모습에서 여인이 지닌 믿음의 경지는 감히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국에 한 보수적인 교단에서는 여성목사안수로 논란중입니다. 미국의 침례교회도 여성목사안수라는 안건이 매년 총회에 올라와서 논의중입니다. 아무래도 바뀔것같지 않은 이들이 붙들고 있는 진리(?!)라는 것은 누군가가 던져놓은 교리적 선언 또는 칼빈이 그 오래전에 이야기한 묵은 주석들 또는 편협한 성경해석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논리로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시대가 바뀌는 이 와중에 우리들이 눈여겨 보아할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기억해야할 오늘 본문에 등장한 여인과 같은 자들이 누구이고, 불신앙 또는 하나님을 아는 듯하지만 늘 잊고 사는 현실에서 끊임없이 믿음을 지켜가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를 살펴야합니다.
진리를 위해 삶의 방향을 세워갈것인지? 누군가가 던져놓은 형식과 배타적인 신앙에 붙들려 복음과 은혜의 영역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야합니다.
신앙은 자유를 복음은 우리에게 생명을, 그리고 이를 위해 헌신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기쁨을 주시고자 열심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고 있다면 맞이하는 오늘은 날마다 새로운 날이고, 기쁨의 날이며, 생명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날입니다.
묵상
하나님이 은혜와 사랑은 어디까지 미칠것 같아요? 내가 정해놓은 틀안에 가둬두는 것은 아닌지?
중보기도
청년들과 유스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스스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려는 청년들 그리고 부장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이번 주일은 성찬주일입니다. 예배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토요일 새벽, 그리고 오린다캠퍼스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에 기도모임에 함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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