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가운데 어린 양이 하나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어린 양은 죽임을 당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에게는 뿔 일곱과 눈 일곱이 있었는데, 그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요한계시록 5:6)
추수감사절을 보낸 어제 하루는 나름의 분주함으로 보낸것 같습니다. 문득, 가족들과 특별한 시간을 가지거나 오랫만에 만남이라는 기대되는 주제로 서로의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공부하다 목회를 나간 목사님들이 다시 공부하기 위해 버클리에 오셔서 그분들과 특별한 장소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로 음식을 준비한 것을 나누고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더듬어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가장 크게 눈의 띄는 것은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것입니다. 기억속에 아이들은 정말 아이였는데, 청년이 되어서 마주한 아이들이 시간을 이해하게 합니다.
가장 큰 주제는 "현재 교회가 마주한 어려움들"이었습니다. 교회공동체마다 어려움을 온몸으로 마주하고는 다시 공부를 선택한분, 다른 길을 선택한 분들의 대화는 교회안에 마주한 어려움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려와 걱정을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현상에 주목하는 신앙생활은 한계가 있다." "기적같은 일을 통해 신앙을 확인하는 행위는 결국 늘 함께하시는 주님을 고백하는데 어려움을 준다" 뭐 이런 이야기들인것 같습니다.
날마다 주님이 함께하시는 것, 순간순간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고백하는 것을 포기한 교회공동체는 특별한 기적과, 간증, 모임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경험하는 체험적 신앙에 교회들이 길들여져 가는 것에 교회가 마주한 연약함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렵고 복잡하고 잘 읽혀지지 않지만, 그 어려움과 복잡함을 거둬내면, 지금 고난받는 순간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7이라는 숫자가 완벽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완벽한 뿔, 완벽한 눈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정말 숫자로 이해한다면 본문은 꽤 어렵게 이해됩니다.
그리고 두루마리가 등장하는데, 두루마리는 글을 쓰고 씰(Seal)로 봉인하게 되어 있는데, 완벽한 이야기를 완벽하게 담아두었다는 의미입니다.
박해가 심해졌을때, 이 박해를 이겨내는 방법은 완벽하고 변함이 없는 주님이 그 순간에도 함께한다는 고백을 할때 그 박해를 이겨낼수 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는 고난속에 누군가는 평온함으로 있는듯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사실은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계시록을 통해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보낸 편지의 목적음 바로 함께하시는 주님!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묵상
하나님이 늘 함께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중보기도
오린다캠퍼스의 매각이 잘 진행되도록 기도해주세요.
토요일 새벽예배는 없습니다. 잊지 마시고 평온함 가운데 하루를 보내세요.
큰 휴일에도 세상을 움직이기 위해 일터로 나가는 분들의 삶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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