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창세기 11장, 1월13일 목요일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에 흩으셨다. (창세기 11:9)

바벨탑의 이야기는 온 민족들이 대동단결 하여서 하나님과 같은 능력을 가지려고 헀던 사건이었습니다. 이들을 흩으시고 언어를 갈라놓은 이유도 이들이 소위 함께 협력하여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마음조차 먹지 못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선악과 사건과 바벨탑 사건의 뿌리는 같습니다. 하나님 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죄성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탑을 높이 쌓아 하늘에 닿아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욕망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보여진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무너뜨리고, 언어를 갈라놓지 않으면 사람이 못할 것이 없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논리이지만, 이 본문을 통해, 사람이 힘을 모으면 하나님이 걱정할만큼의 일들을 해낼 수 있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언어가 갈라지고, 민족이 갈라지고, 문화가 갈라지면서 이 만한 협력과 일치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또한, 일치와 협력을 통해 일을 도모하는 것이 문제라기 보다는 이런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망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늘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를 원하고, 그 행위는 협력과 일치의 정신보다, 계급과 차별 혹은 권력에 의한 통제의 모양으로 인간사에 드러내어집니다.


일치와 협력이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꿈틀대는 높아지려는 욕망에 대한 심판이 곧 바벨탑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라진 언어와 민족, 문화, 국가는 결국 서로가 서로의 갈등의 대상이 되어서 오랜동안 힘의 논리에 의해 현대사까지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시 새로운 협력과 일치를 통해 우리들은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안에 높아지려는 욕망이 존재하고 있으니, 여전히 우리들은 이런 한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폭력의 존재도 이런 욕망에서 비롯되어지고, 차별의 존재도 여전히 이런 욕망에 끌려 다니기 때문인듯합니다. 다행히 그때처럼 모두가 욕망의 탑을 쌓아올리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욕망으로 나름의 탑을 쌓아올리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깊이 돌이켜 봐야 합니다.


 

묵상

최근에 어떤 탑이 쌓아올려지고 있는 것을 경험했나요?


중보기도

  1.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속회와 속회 인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조회수 53회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