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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장, 1월24일 월요일



하나님에 또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나는, 네가 깨끗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잘 안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지켜서, 네가 나에게 를 짓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 여인을 건드리지 못하게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창20:6)

두번째로 벌어진, 다시 아브라함이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그랄왕 아비멜렉에게 이야기합니다. 애굽의 왕때와는 달리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아비멜렉을 말리고는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과정속에 아비멜렉의 항변은, “의로운 한 민족”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물음이 이어졌습니다.

삶의 위협은 임기응변을 유도합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것도 살아남기 위한 임기응변이었습니다. 여기에 이미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이와 비슷한 일을 겪으면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을 경험했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삶에서 하나님은 가까이에서 함께 동행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것은 이 경험과 상반된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고백하고, 믿음을 갖는 것과 달리 상반된 삶의 방향을 정할때가 있음을 확인합니다.

이런 상반된 방향은 사람들을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아비멜렉의 항변에 하나님이 옳다고 손을 들어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야기는 서로에게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지만, 이 이야기속에서 우리들이 경험하는 경험치를 더해보면, 믿음을 깊이 가진다고 해서, 삶의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늘 막막함에 내던지는 상황을 마주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마주함은 우리를 변화가 아닌 이전에 관성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노력하는 삶을 소망하는 것이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마지막 관계를 통해 소중함을 깨닫게 합니다.

묵상

왜 아브라함이 사라를 다시 누이라고 아비멜렉에게 속였나요?

중보기도

  1.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세계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오미크론이 끝나고 다른 변이로 인해 위협받지 않도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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