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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8장, 2월14일 월요일



유다는 그 물건들을 알아보았다.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 나의 아들 셀라를 그 아이와 결혼시켰어야 했는데" 하고 말하였다. 유다는 그 뒤로 다시는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다.(창 38:26)


요셉을 노예상인에게 판 이야기를 마치고 느닷없이 유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는 간단하게 읽어낼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화적인 벽과 전통에 대한 이해가 따라야 하고 여기에 한가지 왜 갑자기 요셉의 이야기 중간에 유다와 세자녀 그리고 며느리 다말의 이야기가 들어갔는지를 고민해야합니다.


우선, 유다는 형제들과 떨어져 살게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느 언저리에 그리 되었는지 모르지만, 어느날 부터 유다는 따로 떨어져 살면서 가정도 꾸리고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첫번째 아들의 며느리 다말을 맞이하는데, 첫째 아들이 죽고는 둘째가 첫째의 핏줄을 잇기 위해 형수와 동침을 해야합니다. 둘째는 형수를 통해 형의 핏줄을 낳는 것이 실어서 사정을 밖에다 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런 이유로 둘째도 죽게되고, 셋째마자 죽을 것을 두려운 나머지 유다는 며느리 다말을 소박을 내리입니다.


여기서 다말은 소박 맞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듯하지만, 당시 소박을 맞는 여성의 삶은 상상이상의 비참함을 경험해야했을 것입니다. 이런 다말이 창녀로 분장하여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을 하고는 임신을 합니다.


유다는 분노하지만, 다말이 보인 증표를 보이고는 다말이 옳다고 인정하고 자신이 셋째아들과 다말을 결혼시켰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내용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유다가 아닌 다말이었고, 다말의 자신의 삶을 정당하게 인정받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화적 전통과 한 여인의 삶이 어우러져 유다의 이야기는 어색하게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가 전체 요셉의 이야기에 중간에 끼어든 이유는 아무래도 유다라는 이름의 중요성 때문인듯 합니다.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집니다. 유다지파의 영향력인 다른 모든 지파와 대등한 균형을 이룹니다. 이 대등함은 유다의 특별한 삶의 모습에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유다는 독립적으로 떨어져 살았고, 아들들이 죽어나가는 사이에 며느리 다말의 지혜로 유다의 자손들이 이어집니다.


역사의 중심에는 남성들의 휘젓고 있지만,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여성들의 지혜로 위기를 넘기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면 다말은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인물입니다. 즉 다말의 무모해 보이는 행위는 유다의 의식을 깨우치고 다윗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으로 연결됩니다.


요셉의 이야기 중간에 끼어든 유다의 이야기는 결국 유다의 의식을 깨우고, 다말이라는 여인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독립된 듯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일치하는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묵상

다말이라는 여인은 어떤 여인이었더것 같습니까?


중보기도

1. 질병가운데 있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월요일을 시작하는 분들을 위해서 하루, 주님과 든든히 동행하기를 기도해주세요.

3.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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