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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열린교회BKUMC

출애굽기 21-22장, 3월17일 목요일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나그네를 학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붙여 살던 나그네였다. 너희는 과부고아를 괴롭히면 안 된다. 너희가 그들을 괴롭혀서,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반드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겠다. (출 22:21-23)

법치 국가를 세운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 일입니다. 당시 출애굽이후에 광야에서 모세가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언약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켜야할, 즉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지켜내야할 율법들입니다. 이 법률들은 하나님향한 것도 있지만, 세세한 일상의 삶 거기에 다른 이들에 대하는 태도와 원칙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법전에 대해 이야기하면 함무라비 법전을 언급하는데, 바빌론의 왕이었던 함무라비 왕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율법서입니다. 포로기의 배경이 되는 바빌론은 신바빌론이고 함무라비왕을 이야기하는 바빌론은 훨씬 고대 기원전 1700년경의 왕국입니다.


이 함무라비 법전과 모세의 율법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해아래 새것이 없는 것처럼, 함무라비 법전이 모세의 율법선의 원형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비슷한부분도 있지만 극명하게 차이나는 내용은 고아와 과부 그리고 종으로 부리는 자, 이방인들에 대한 율법입니다.


즉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으로 예언자들이 선포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런 특별한 율법정신을 기본으로 합니다. 이런 유사성을 이야기하면 우리들이 미국에 살면서 느끼는 유사성정도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율법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전 노예처럼 살때와 달리 광야에서 서로 엄격한 환경에서 마주하며 살아갈때 마땅히 지켜야할 것들을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정도는 지켜야한다는 것들이 녹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사순절 셋째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고난의 기억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깨우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구원의 무게를 깨우치듯, 우리들은 이 시간 모든 것을 초기화하는 시간입니다.


묵상

지금까지 쌓인 것들을 초기화 하는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끼? 의식이든 삶의 방식이든?


중보기도

1. 장명숙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오늘 백혈구 수치에 따라 항암치료를 진행할지 결정합니다.

2.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든든히 이 지역에 자리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3. 3월19일 Raise Against Hunger 행사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작은실천

교인들의 사업장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부자가 말하였다. ‘조상님, 소원입니다. 그를 내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나는 형제가 다섯이나 있습니다. 제발 나사로가 가서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고통 받는 이 곳에 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 누가복음 16:27-28)

프리드리힉 하이에크(Friedrich Hayek)와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은 시카고 학파 를 대표하는 경제학자입니다. 하이에크는 경기순환론, 자본의 순수이론을 강조했고, 프리드먼은 자유방임주의와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둘이 함께 주장한 것은 국가가 국민들의 일정부분 소득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에 이야기하는 기본소득의 개념을 사실상 산파 역할을 한 사람들입니다. 복잡한 사회일 수록 현대사회구조에는 연대감이 강조되어야 하는데, 이 연대감을 갖게 하는데는 기본소득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기본소득은 단순히 돈의 문제 혹은 세금의 문제가 아니라, 소득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도구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이에크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배경은 “자유”에 대한 깊은 통찰력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개인의 자유”는 이기적인 환경을 생산한다기 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는 수준은 곧 도덕적 가치의 성숙함을 드러내는 척도로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개인의 자유는 곧 타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에 무게를 둔 이상적 자유주의론의 입장이 강조된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자는 이제 경제적 간극을 나타내는 용어가 아니라, 사회갈등 지수를 드러내는 척도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는 부와 가난을 이와 비슷한 간극으로 표현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에서 부자는 죽어서 베드로품에 있는 나사로를 목격합니다. 하늘 나라에서 뒤집힌 자신과 거지 나사로의 위치를 보며 후회하지만,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경고하지 않았도 이 예화를 읽는 자들은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고통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결국 천국을 세워가는 일입니다.


묵상

세상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 우리들이 무엇을 노력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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