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0장-31장, 3월25일 금요일



그에게 하나님을 채워 주어,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온갖 기술을 갖추게 하겠다.(출애굽기 31:3)

분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적 행위에 빠지지 않는 행위입니다. 혹시 터키나 그리스로 성지순례를 가보면 정교회 예배당에 향을 피우고, 초를 태우는 것을 본적이 있으실것입니다. 실제로 예전에서도 카톨릭, 성공회, 정교회는 분향을 드리며 예배집례를 인도합니다. 분향의 의미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올려드린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교회의 예물과 기도가 타올라 하나님께 올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30장에서는 분향단을 만드는 작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파자손중, 유다지파의 홀의 손자를 지명하여 성전을 돌볼수 있는 책임을 쥐어줍니다. 하나님의 영과 기술과 지혜를 주심으로 성전안에 필요한 도구나 장식물을 만드는 일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하면 교회 재단이사회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막을 만들고 그안에 성구를 넣고 하는 일들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요즘에는 예배당이 극장식, 혹은 창고를 개조해서 간단하게 십자가 그리고 무대, LED 판넬로 간단히 꾸미지만, 성막,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할 다양한 성구들이 필요했고, 특별히 이를 돌볼 지혜로운 자를 지명까지 했습니다.


혹시 교회에 오시면, 저희교회는 성전 성막의 안내에 따라 마련된 전통적인 양식으로 교회성전을 건축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회랑 그리고 지성소까지 갖춘 교회를 요즘에는 찾기 힘듭니다. 긴 복도는 옛날방식이 아니라 그 모양에 따라 예배를 드리는 마음제사가 달라지는 신학적인 해석이 담긴 공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머무는 공간이 곧 하나님과 함께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마음을 담아 성막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성전이라고 부르는 곳도 하나님이 함께하는 곳으로 성전을 디자인하고 마련되어진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묵상

어떤 공간에 머물고 계신가요? 성전을 들어올때 어떤 느낌인가요?


중보기도

1. 장명숙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토요일에는 새벽예배가 있습니다. 줌으로 참석할 수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시죠.

3. 4월마지막 주 주일에 강남순교수님과 함께 하는 강연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고의 폭을 넓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해주세요.


사순절 작은실천

막연한 두려움 찾아내기

텀블러 가지고 다니기




지혜로운 사람은 여기에 쓴 것을 깨달아라. 총명한 사람은 이것을 마음에 새겨라. 주님의 길은 올바르다. 의로운 백성은 그 길을 따라 살아가지만 죄인은 비틀거리며 넘어질 것이다. (호14:9)


성경이 말하는 죄의과 의인은 하나님의 길을 따라 살아가냐, 아니냐로 구분합니다. 이 절대적인 선언 앞에, 하나님의 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길은 자기의 기준으로 자기의 방법으로 이해하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면, 바리새인과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하나님의 길”에 대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고백으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에 동참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길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요즘, 아직도 이 길에 대해 선택을 강요하는 분들이 만나게 됩니다. 진영논리에 깊이 빠져있는 분 혹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고 배척하는 분, 분명한 기준없이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따라 혹은 포장된 주장에 따라 갈라놓고 배척하는 일에 서슴치 않습니다. 이 일은 진리를 향한 부르짖음으로 포장되지만, 사실 자기 맘에 드냐 안드냐의 속좁은 행위입니다.

주님의 길은 올바르다! 이 말은 내가 판단하는 기준에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징계를 내 판단은 의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판단과 기준은 솔직히 초등학교때부터 우리안에 자리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좀더 마음이 넓어지고, 관용과 품는 품이 넓어지는데 이상하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한대로 판단한대로 함께하지 않으면 배척하고 정죄하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의롭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이 선포한 공의와 정의에 동의하고 삶을 또한 그렇게 살기를 결심한 사람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죄인은 올바른 하나님의 길 위에서 자기의 생각과 고집으로 다른 이들을 조정하려는 마음으로 가득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품을 넓게 가지면 그리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우리는 갈등보다 더 큰 의로움의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묵상

어떤 품을 품고 살아가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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