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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9장-40장, 3월31일 목요일



기쁨의 언덕 묵상

그들이 길을 가는 동안에, 에는 주님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구름 가운데 불이 있어서, 이스라엘 온 자손의 눈 앞을 밝혀 주었다. (출애굽기 40:38)

2022년 3월의 마지막날, 출애굽기 마지막을 읽고 있습니다. 출애굽이라는 거대한 주제의 마지막 본문은 제사장의 의복에 관한 내용입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사람의 존재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데, 제사장의 의복을 정할정도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한 예전적 의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줍니다.


요즘은 현대식 예배라는 말로 목회자가 양복을 주로 입지만, 예전(예배의식)을 중시하는 교회는 여전히 성직자의 예복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예복은 말 그대로 예배를 위해 갖추는 복식입니다. 마음가짐만에 문제가 아니라 제사장이라는 무게감을 의복을 통해 확인하고, 예배에 임하도록 하는 장치가 함께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요즘에 목회자가 입는 의복을 이런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시대에 맞춰서 모양은 바뀌지만, 이 마음가짐과 의미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성막의 제작이 완성되고, 다시 가나안으로 행군이 시작되었습니다. 가는길과 때를 성막에 임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결정해주었습니다.


성막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증과 약속에 땅을 향해 가는 시간이 정해지고, 하나님의 때를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의복의 완성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성막과 가나안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냐에 대한 태도입니다.


신앙의 태도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드러내지는 것으로도 표현되어야 합니다.


묵상

어떤 마음 가짐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시나요?


중보기도

1. 교회학교 아이들, 중고등부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특별히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소망회 회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장명숙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사순절 오늘의 실천

어린이들과 노인들을 위해 기도하기


사순절 묵상

요한은 타오르면서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잠시 동안 그의 빛 속에서 즐거워하려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성하라고 주신 일들, 곧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바로 그 일들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증언하여 준다. (요5:35-36)

3월의 마지막날입니다. 2022년은 바람처럼 시간이 가는 것 같습니다. 물리적 시간도 시간이지만, 삶에서 느껴지는 시간도 비슷한 속도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잠시 방문하신 어머지가 한국으로 잘 돌아가셨습니다. 올때 기뻐서 오셨다가, 가실때 더 기뻐하며 가시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머문 공간에 대한 그리움과 익숙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잠깐 생각해보았습니다. 약 두달 반은 어머니와 보내는 시간동안 많이 늙으셨다는 생각에 언제 밥한끼 같이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싶어서 삼시세끼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덕분에 제 몸은 약간 불었지만(?!) 시간의 의미는 어느것과도 바꿀수 없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은 가고 삶도 그 시간에 맞춰서 나이들어가는 물리적인 한계를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디 어머니만 나이드실까.. 저 또한 나이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애들이 언제 이렇게 컸니..” 의젓해진 애들의 모습에 약간 어색해하시는 어머니 말씀에, 훌쩍커버린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말, 언제 이렇게 커버렸나?” “해준것도 별로 없는데..” 분주함에서 허우적 거리는데, 애들은 마음도 몸도 훌쩍 커버렸습니다.

이른 아침에 이런 저런 한국소식을 듣는 스마트폰 소리가 사라지고 너무나 조용해진 공간에서 어머니의 부재를 경험하며 아이들의 존재를 이렇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부재와 함께 예수님에 대한 증거는 동시에 필요하게 되었던것 같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미리 예비했다는 복음서의 증거는 요한복음에서는 요한과 예수님의 사역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봅니다. 요한이 마련한 공간에서 빛을 맛을 본 사람들이 이제 예수님을 통해 본격적인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재와 존재를 동시적으로 경험되어지며 이경험을 통해 부재는 존재를 통해 더욱 확증되어지고, 반대로 부재를 통해 존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지는 것 같습니다. 요한의 부재는 예수를 확증하고, 예수의 존재를 통해 요한의 부재의 의미는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삶은 늘 이런 경험을 통해 완성되어가는 듯 합니다.


묵상

어떤 부재와 존재를 경험하고 계신가요? 어떤 변화와 새로움을 경험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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