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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5일 목요일, 신년특별새벽기도회 4




신앙의 기본원칙 4: 말의 원칙

야고보서 3:1-18


1. 야고보는 좀더 구체적인 내용들을 언급하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이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 지를 이야기합니다.

2. 1절에, “선생이 되려는 자가 많으면 안된다는 의미”는 듣지 않고 말하는 자만 공동체에 가득할 때 생기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3. 선생이 되려는 자가 많으면 안된다는 야고보의 언급은 2절에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 온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라는 문장을 통해 무슨 의도로 이야기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4. 거꾸로 생각해보면, 당시 야고보가 경험하는 초대교회는 “말이 많은 자들로 인한 어려움”에 직면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여러가지 문제 중에, 특히 행함을 드러내지 않는 믿음의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들이 내뱉는 말이 믿음 있는 사람 답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5. 이것은 단순히, 말이 많아 실수하는 사람들만 지적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10절에, 똑같은 입에서 찬양과 저주가 나온다는 말은, 두마음을 품은 자들이 교회공동체에서 일으키는 문제가 믿음 있는 자로서의 바른 행위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6. 사실, 오늘 본문은 다른 지혜서에서도 다루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잠언이나, 집회서등 지혜를 다루는 문헌에서는 “말을 조심해야하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7. 하지만, 야고보서는 다른 지혜서들과는 달리, “말에 대해서 매우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말을 조심하는 지혜를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을 권면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입으로 하는 실수는 거의 용납할 수 없는 수준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에 놀랄 수 있습니다.

8. 말의 실수는 상처와 분열 혹은 단절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문제의 해석은 야고보로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한입으로 두말을 하는 자들, 다시말해, 두마음을 품고는 신앙이 좋은 척, 믿음이 있는 척 하지만, 본래의 욕망은 믿음과 신앙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자를 냉정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9. 3절에서 4절에 등장하는 말과 배 그리고 작은 불과 산불 대한 예화는 고대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필로의 “우의적 해석”과 플루타르코스의 “수다에 관하여”라는 책에서도 이 세가지 예화를 통해 “혀”로 드러나는 힘이 생각보다 우리 인생을 이끌고 간다는 교훈을 나누고 있습니다.

10. 이처럼, 보편적인 도덕, 혹은 윤리적 규범으로서 의 “말을 조심하는 행위”는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11.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들도 어쩌면, 이런 말의 힘과 실수로 인한 고통들을 이야기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속담중에서도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은 꽤 비중 있게 어릴 적부터 들어온 말입니다.

12. 6절에서 야고보는 “혀”를 불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혀로 온몸을 더럽힐 수도 있고, 인생의 수레바퀴를 전부 불태울 수 있다고 합니다.

13. 여기서 말하는 인생의 수레바퀴는 당시 철학적 사고를 수행하는 전문적인 용어 중에 하나로, “삶의 전체” 즉 인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14. 야고보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매우 극단적이고 부정적으로 “혀”가 저지르는 부정성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15. 8절에 이런 “짐승을 길들일 수는 있어도, 혀는 길들일 수 없다는”야고보의 단정적인 문장은 거꾸로, 야고보가 경험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말의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싶은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16. 12절은 말을 조심해야하는 행위가 단순히 “혀”의 문제가 아닌, 그 뿌리에서 생기는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는 이제, “어떤 마음, 즉 어떤 뿌리”를 두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바뀝니다.

17. 당연히 무화과 나무에서 올리브가 열릴리 없고, 포도나무에서 무화과가 열릴 수 없습니다.

18. 13절부터는 장황하게 말에 대한 이해를 나누었던 이유가 등장합니다.

19. 우선, 야고보의 질문은 “나는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연결되어집니다. 직접적인 서술이 아닌 간접적으로 정리해보면, “하늘에서 오는 지혜 즉 중심으로 사는가? 아니면 땅에 속한 것, 즉 육신에 속한 것을 중심으로 사는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20. 16절, 17절은 더 단순하게 악마에게 속한 생각과 하늘에서 오는 지혜를 구분해서 설명합니다. 악마에게서 온 생각은 시기심과 경쟁심, 질투와 온갖 악한 행위로 대표되어집니다. 여기에 자랑과 진리를 거스르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21. 하늘에서 오는 지혜는 순결하고, 평화롭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다고 합니다.

22. 그리고 마지막으로 18절에,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

23. 마지막 한절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뿌리”는 무엇이고, 우리들이 맺어야 할 열매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24. 말은 마음을 통해 비춰내는 거울과 같습니다.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그 사람의 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5. 야고보가 겪고 있는 과제는 성도들이 온전한 뿌리를 통해 바른 말과 삶의 모양이 드러나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26. 교회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제자들을 완전히 새롭게 변화시켰고, 예수를 믿는 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27. 사람들이 모여드니, 다양한 목적과 이야기가 가득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른 뿌리를 통해 바른 열매를 맺는 사람이 있었지만, 정말로 마음에 두 마음을 품고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지경에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28. 야고보가 “말을 조심하라”는 것을 “입”이 가지는 문제를 피력함으로 “공동체 안에서 입조심”하는 것을 독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야고보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의 원동력을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살려고 하는 것인지, 땅의 욕망을 드러낸데 사용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29. 신앙의 기본원칙 4번째는 우리들의 신앙이 뿌리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올바른 자양분을 통해 정의열매를 맺고, 평화를 이루는 사람으로 이 땅을 살아가며 그 씨앗을 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0.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신앙의 뿌리를 든든히 세워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31. 바라기는 2023년 열린교회가 든든한 믿음의 뿌리가운데, 온전한 신앙을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중보기도

장명숙집사남이 어제 응급실에 가셨습니다. 맹장에 문제가 있어서 가셨는데, 전이가 된것이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인지 아직 모르는 상황입니다. 수술을 해보고, 맹장을 제거하면 가벼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전이가 된것으로 판단한다고 합니다. 새해가 시작되었는데, 새로운 기대와 희망이 한편에서는 싹을 틔우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치열하게 지난 시간에 묶여서 투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함께 용기있게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어제,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몇몇 교우들의 정원에 있던 나무들이 쓰러지는 일이 있었는데, 다행히 큰 피해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속히 이 시간이 지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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