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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7일 토요일, 신년특별새벽기도회 6






신앙의 기본원칙 6: 무엇이 죄인가?

야고보서 4:11-17


1. 어제에 이어서 야고보는 오늘 본문을 통해 교회 안에서 경험되어지는 그리스도인 답지 않은 모습들, 반복해서 이야기하면, 하늘의 뜻을 품은 행위가 아닌, 땅의 행위, 다르게 이야기하면 두마음을 품은 사람들, 혹은 세상의 방향에 아직도 서있는 사람들, 더 심하게 이야기하면 악마에게 휘둘리는 자들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 나누고 있습니다.

2. 1절에 “서로 헐뜯지 마십시오.” 에서, 헐뜯다는 “중상모략, 혹은 비방하는 말”로도 번역할 수 있지만, “악마의 말”로도 번역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3. 헐뜯는다는 것은, 어쩌면 어젠 본문에 등장한 “악마”에 대한 언급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헐뜯는 것을 “악마같이 구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이어지는 문장에, 헐뜯는 것에 “심판하는 사람”이 추가된 문장이 등장합니다.

5. 여기서 심판한다는 것은 “구별, 혹은 차별의 의미”를 포함하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6. 헐뜯는 것의 목적은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 깎아내림의 목적은 구별 짓기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깎아내림으로 나와는 다르다~! 우리와는 다르다~! 라는 구별과 차별로 이어지는 모습으로 연결된 된다는 것입니다.

7. 다시 말해, 헐뜯는 것 즉 비방하거나, 악마의 말, 악마에 의해 조정 당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차별하거나, 구별을 지어내는 특별한 죄에 노출된다는 의미입니다.

8. 이에 대해, 야고보는 이런 행위가 곧 “율법을 심판하는 행위”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9. 언뜻 문장이 쉽게 와 닿지 않는데, 이 말은 결국 율법은 행함으로 지키는 것이 목적인데, 그것을 실천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누가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를 판단하는 것에만 몰입한다 의미입니다.

10. 율법이 문제가 된 것은 율법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지키는지 안지키는 만 판단하는 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11. 야고보가 지적하는 것은 율법을 그렇게 했듯이, 믿음도 그렇게 판단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믿음이 있냐 없냐를 판단하는 기준도 율법과 비슷하게 여기는 자들로 인해서 믿음의 의미와 믿음의 삶에 대해서 교회가 혼란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12. 야고보는 판단이 아니라, 행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믿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으로 당장 보이는 것”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보여지는 것”이 야고보가 주장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왜 필요한 지에 대한 이유일 것입니다.

13. 12절에서 야고보는 명확하게, 이 모든 판단을 하시는 분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고” 오직 한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판단은 우리들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4. “도대체 그대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합니까?” 이 문장을 통해 우리들은 정확하게 다른 이들에 대한 판단을 멈추고, 함께 행함을 드러내는 것에만 몰입해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5. 13절은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을 지목해서 이야기합니다. 문장을 보면, 다른 도시에서 장사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인 듯합니다.

16. “들으십시오!”라는 문장은 “와서, 내 이야기를 들어라”는 요청이 담겨진 문장입니다. 그러니 이 특정한 그룹을 향해 야고보가 전하는 문장은 작정하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7. 당시에, 도시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부유한 계층의 상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안에 독자들은 분명히 유대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기독교인들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초대교회공동체와 빈번하게 소통하는 자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18. 이들에 대한 야고보의 일관된 입장은 “교만함”이 함께 동행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교만하며, 앞에 있는 구절과 함께 생각해보면, 서슴없이 남들을 판단하는 자들의 대표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 서로 헐뜯는 데 앞장섰다는 것 까지는 읽어낼 수 는 없지만, 비슷한 정황속에 이 상인들의 위치는 공동체안에서 교만함과 함께 상대를 판단하는 것에 익숙했을 것이고 더 나아가 헐뜯는 지경에 이르렀을지도 모릅니다.

20. 14절에, 야고보는 이들을 향해 애정이 담긴 권면을 전합니다. 우선,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지금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살지 말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21. 앞 날을 누가 알겠는가?라는 레토릭은 흔히 교만하지 말고 겸손 하라는 의미에서 사용됩니다.

22. 이어지는 본문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꽤 직접적이고,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단지 부자 상인들 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위치에 있더라도 교만하거나,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것에 익숙한 모든 이들에게도 적용되는 문장입니다.

23.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존재” 그리고 “안개”와 같은 존재로서 야고보는 부자들을 혹은 남을 판단하는데 머뭇하지 않는 자들을 향해 전하는 말씀입니다.

24. 이것은 지금을 살아내는 우리들에게도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세상의 풍족함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세상 속에서 우리들의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25. 우리가 사는 이곳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발달한 기술을 경험하고 개발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6. 이런 곳에서 인간은 최고의 인간의 이성을 자랑하는 것을 경험하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풍족함을 만끽하는 분위기에 있을 수 있습니다.

27. 이렇게 승승장구 하는 자들에게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존재”라고 이야기한다면, “안개”와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28. 교만한 자의 문제는 아무리 생명을 얻는 말씀을 들어도 그것을 무시할 정도로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전혀 듣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그냥 사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지속한다는 의미입니다.

29. 야고보의 기대는 15절에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라고 고백하기를 원하지만, 16절에, 오히려 이런 자들은 “우쭐대며 자랑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0.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 야고보는 다시 “악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우쭐대고 자랑하는 행위가 악한행위라는 것입니다.

31. 정리해보면, 남을 판단하는데 익숙한 자가 야고보가 볼 때 악한일에 휘둘리는 자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내일을 알 수도 없고, 먼지 같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물질이 풍족한 자들은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이런 판단이 곧 복음을 해롭게 하는 것이라고 야고보는 판단한 것 같습니다.

32. 세상에서 할 법한 삶이 교회안에서 경험되어지니, 야고보가 무엇이 문제인지를 지적한 것 같습니다.

33. “내일 일을 알 수 없고” “안개”같은 존재라는 것은 우리들이 경험하는 존재의 허무함 혹은 우리 인간이 갖는 한계로 인정되어지는 진리입니다.

34. 영원한 것은 없고, 우리는 늘 제한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지적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쭐대고, 자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35. 야고보는 이런 행위를 “악한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36. 17절 말씀에 보면, 결론적인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 하지 않으면, 그것은 죄가 됩니다.”

37. 교만한 자의 특징은 “알면서 죄를 짓는 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듣지 않고, 선한일을 추구하는 것보다 자기가 이룬 것을 더 가치 있게 평가하는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38. 이런 자의 악한 행위는 서로를 헐뜯는 것은 물론이고, 남을 판단하는 것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선한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렇게 살아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일이 곧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9. 야고보가 경험한 교회안에 가장 악한 행위는 바로 이런 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물질이 많다고만 해서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하게 하는 무엇인가를 소유한 자”는 꼭 이런 실수를 저지릅니다.

40. 야고보가 이야기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뜻은 “이 행함은 곧 선한일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고, 믿는 자들에게는 이 행함의 범위가 생각보다 더 넓고 확장되어 진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41. 아니, 이정도까지 해야 돼? 라는 질문이 생긴다면, 그 정도까지 반드시 해야 하고, 그보다 더 해야 하는 것이 믿는자가 보여야할 행위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2. 2023년 신년새벽기도회를 6편의 “신앙의 기본 원칙”을 나누었습니다.

43. 비슷비슷한 내용이지만, 야고보서를 통해 확인한 이 원칙들은 매우 실천적이면서, 우리들이 반드시 새겨야 할 신앙의 실천행위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44. 마땅히 해야할 선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5.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근심하며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우리들의 삶에서 세워져야 하는 행위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더욱 힘을 내 믿음의 기초를 든든히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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