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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1일 주일 설교_주현후 6주



고린도전서 3:1-9

하나님의 밭과 건물


1. 지난 주간 터키와 시리아 국경에 큰 지진이 났습니다. 이만명 이상 희생자가 났고, 폐허가 된 도시는 계속해서 희생자가 늘어날 것 같이 피해가 크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피해를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다음주에는 지진으로 피해입은 분들을 돕기 위한 특별헌금을 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함께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3. 청년들이 바자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열심이 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혹시 버릴까 말까 망설이는 것들이 있으면 과감하게 가져다 주시면, 잘 팔아서 Raise Against Hunger기금을 마련하는데 보탠다고 하니까, 마음을 깊이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이 두가지 광고를 먼저 드린 이유는 오늘 읽은 본문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5. 본문의 내용은 명확하게 읽혀집니다. 본문내용만 봐도 지금 고린도교회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6. 이런 내용은 사실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내용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런 경험을 지혜롭게 다루는 것에 대해서 쉽지 않은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약 50년경에 교통의 요충지인 고린도에서 사역하게 됩니다. 약 1년반을 사역하다 어느정도 교회가 자리가 잡을 것 같아 다른 지역 전도를 위해 고린도를 떠난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어려움을 듣고는 편지로 그 내용들을 확인하고 가르치고, 방향을 설정하는 노력을 한 것 같습니다.

8. 고린도교회가 겪은 어려움은 우상에 바친 제물들이 시장에 흘러나와서 팔고 있는데, 그것을 사서 먹어도 되는지, 은사들이 많이 있는데 어떤 은사가 큰지 작은지, 여자들이 예배 때 머리에 천을 씌워야 하는지 아닌지, 성찬식에서 일어난 문제, 그리고 성적으로 문란한 문제등, 일일이 나열하기에 복잡하고 많은 일들이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난 문제입니다.

9. 그 중에 오늘 읽은 본문은 “교회의 분열”에 대한 내용입니다.

10. 고린도교회는 매우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가득한 도시에 자리한 교회였습니다. 여기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바울의 모습을 보면, 꽤 자신감이 넘쳤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절대로 교회가 될 것 같지 않은 곳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교회를 세웠으니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열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1.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계속해서 “될 것과 안될 것”, 혹은 “어려운 것과 쉬운 것”을 나눠서 사역을 생각하지만, 당시에 바울은 이런 것보다, 어디든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

12. 당시 고린도 교회에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는 지나친 지식이 넘쳐났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대의 최고의 이성, 혹은 당대에 가장 진취적이고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공간에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13. 얼핏 보면,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삶의 자리와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차고 넘치고, 가장 빠르게 변하는 곳에 우리들은 살고 있으며, 가장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사는 자리,

14.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의 관심과 문화는 비슷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5. 고린도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독특한 세계관 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 혹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눈높이가 관대했습니다.

16. 정신만 고귀하면 육체적인 것은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는, 즉 영과 육을 철저히 분리해서 구분하는 것이 세상을 이해 하는 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7. 이것보다는 복잡한 철학적인 이론이 있는데, 이를 이해한 사람들은 한가지에만 집중했습니다. “정신만 거룩하면, 육신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

18.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1절에 보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향해서 바울이 “영에 속한 사람들”아니라, “육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으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19. 이 문장을 읽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정확하게 바울은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20. 여기서 말하는 “육에 속한다”는 의미는 예수를 믿고 교회안에 있음에도 여전히 고린도지역에서 만연하는 가치관과 생활방식에 계속 지배 받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21. 바울의 관심은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니 육적인 것을 반드시 버리고, 영적인 것만 택하도록 요청하지 않고, 이런 삶에 익숙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복음을 전하고 노력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22. “곧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아이 같은 사람에게 말하듯 하였습니다”라는 바울의 고백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깊은 배려와 관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3. 2절에 보면, “젖을 먹였지,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어떤 한계를 경험 했다기 보다는 고린도교인들에게 부담가지 않도록 서두르지 않고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24. 또한, 여기서 말하는 단단한 음식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즉 그 십자가를 고백하고 그 사건을 고백한 단계에까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25.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우기 위한 선교전략은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고백하고, 이전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거듭 나야 한다는 일방적 복음선포가 아니라, 고린도사람들을 이해한 전략적 선교방법을 통해 복음을 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6. “그때 그 음식을 감당 할 수 없고, 사실 지금도 감당할 수 없다”는 바울의 편지내용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절망을 나타냈다기 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이 만만치 않으며 그렇다고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비슷한 예수 운동을 통해 변화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7. 이점은 우리들이 깊이 생각해야할 내용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생각하는 교회의 이상이 있는데, 우리가 바라는 이상보다, 바울은 점차적으로 단계를 거쳐 교회가 성숙해지기를 원했고, 그 눈높이, 혹은 문화와 특성들을 기반으로 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전도방법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28. 1절-2절에서 보여주는 바울의 수사학적 표현은 사실, 고린도교회에 유행하는 문학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9. 직접적인 말보다, 바울의 이런 비유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깊은 사색으로 초대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의도는 고린도교회가 부족하다, 그들의 신앙은 가볍다가 아니라, 복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전해지고,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 문장들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0. 그런데, 이런 유화적인 표현을 썼던 바울이3절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냉정하게 정의합니다.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31. 이 문장은 질책하는 혹은 문제를 지적하고 수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던지는 문장입니다. 이런 문장구조도 사실, 고린도지역에서 유행했던 수사학적인 방법입니다.

32. 우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냉정하게 메스를 대듯이 지금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직시해야 할 문제를 바울이 밝히겠다는 표현으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33. 바울이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다음 구절에서 드러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있으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34. 다양한 문제가 고린도교회 안에 있었는데, 바울은 “시기와 싸움”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5. 시기와 싸움에 대해 바울은 육에 속사람, 그리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이유로 생긴 문제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36. 4절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나는 바울편”이라는 사람들과 “나는 아볼로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으니, 바울이 “육에 속한 사람들이나” 이런 일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37. 육에 속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증거를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38. 다시말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인과 같은 삶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39. 바울은 지금 이런 사람들, 즉 육에 속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 “시기와 싸움으로 공동체를 어렵게 하는 일을 한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40. 바울은 이런 시기와 싸움으로 인해 공동체가 “누구의 편”으로 갈라지는 것에 대해서 자신을 직접 언급하며 이야기합니다.

41. 실제로 바울은 교회안에 자신을 좋아하는 교인이 있고, 자신 보다 아볼로를 더 좋아하는 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42. 아볼로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가르치는 은사가 있었고, 말을 잘하는 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비해 바울은 글보다는 말은 어눌했으니, 사람들은 비교했을 수 있습니다.

43. 바울은 분명히 이런 관계를 갈등과 시기의 관계가 아닌 한가지 사역, 즉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으로 부터 맡겨진 일을 각자 감당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44. 6절에,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는 표현은 서로 다른 역할을 통해 고린도교회를 세워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45. 7절에서 9절을 함께 보면,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8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은 하나이며, 그들은 각각 수고한 만큼 자기의 삯을 받을 것입니다. 9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건물입니다.”

46. 사실, 바울이 오늘 한 이야기의 주제는 이 세절에 담겨있습니다.

47. 공동체에 갈등이 없는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문제는 다 있고, 사람도 친한 사람과 불편한 사람이 다 존재합니다.

48. 어딜가면 편안한 곳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공간이나 불편한 사람이 있고, 맞는 사람이 있고, 일부러 피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49. 오늘 우리들이 예배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지만, 아마, 여러분들이 교제하거나, 말을 나누는 사람들은 제한적일 것입니다. 이것을 바꾸자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50. 저도 교회올 때 침을 꿀떡 삼키고 다짐합니다. 불편함을 극복하자, 어색함을 드러내지 말자.

51. 가끔 성도들과 이야기해보면, 각자의 감정에는 아주 잘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분들이 있는데, 목사가 그런다고 하면 다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목사님은 참으셔야죠..”

52. 이게 재미있는 말입니다. “목사는 참으셔야죠!”라는 말은 사실 “우리들의 기대가 담긴 말”입니다.

53. 그래도 목사님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이 말은 “기독교인이라면 이정도는 할 수 있어야죠~!”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54.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각자의 일을 주셨습니다. 사람마다 어떤 일이 더 힘들고 쉬운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내가 제일 힘든 일을 하고 다른 이는 좀더 쉬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55. 그런데, 사실 쉬운 일은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일뿐입니다.

56. 고린도교회도 비슷합니다. 사람마다 반응이 다릅니다.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연약하다고 바울이 인정한 것처럼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것 같은 고린도교회에 바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탁하고 권면하는 것은 9절처럼, 우리는 “동역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57. “동역자”는 “συνεργός sunergos”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함께 일하는 노동자”라는 말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사명을 주셨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함께 일하는 우리들은 “동료”라는 말입니다.

58. 그런데, 이것을 바울은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소유격을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동역자”로 헌신할 때,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하나님께 소유된 동역자이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59. 그리고 바울은 이런 우리들이 바로 “하나님의 밭”이고, “하나님의 건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60. 바울의 이 수사학적인 표현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았을 것입니다.

61. “밭”과 “건물”은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밭을 통해 공동체가 함께 동역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을 상징하고, “건물”은 여러가지 구조들을 통해 건물이 지탱되는 것처럼 우리들 모두가 동역 하는 가운데 “건물을 세워가는 존재”로서 우리를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62. 앞서서 지진으로 피해본 분들을 후원하고, 청년들이 하는 바자회를 후원하자는 의미는 “우리들은 이미 공동체”를 통해 세워진 동역하며 하나님이 밭과 같은 존재로, 건물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동역자”이기때문에 요청 드리는 것입니다.

63. 목사 혼자 일하는 곳이 교회가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동역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64. 지난주간 Growing Church Conference에 다녀왔습니다. 임원으로 섬기기도 하지만 그보다, 이 컨퍼런스의 성격은 큰 교회, 큰 목사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공한 사역자라는 규정도 없습니다.

65. 작지만, 크게 섬기는 자들, 멀리 변방에 시골에서 사역하지만, 가족이 온통 헌신하며 사역하는 목회자들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66. 그래서 오시는 분들의 비행여비를 보태 주고, 기왕이면 좋은 밥을 나누게 하고, 장학금도 마련합니다.

67. 이번에 특별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청년의 시간을 보내고, 선교사님 아들과 결혼해서, 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하는 사모가 된 분을 만났습니다.

68.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많은 만남도 있고, 나눔도 있지만, 우리들이 지금 이자리에서 하는 사역의 열매는 우리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 수 없는 곳까지 흘러간다는 사실에 저는 감격했습니다.

69. 눈에 보이는 열매를 우리는 기대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열매를 맺고 있는 것 같습니다.

70. 그것은 분명히 우리들이 동역 했을 때 주어지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71. 우리는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건물입니다.

72. 우리들이 할 일은 분명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73.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가운데, 더욱 서로 사랑하기 힘씀을 노력해서, 하나님이 밭, 곧 건물인 열린교회는 든든히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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