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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6일 주일 설교, 사순절 1주




로마서 5:12-21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


원죄와 구원

1. 오늘 읽은 본문은 기독교에서 중요한 두가지 주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원죄”에 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구원”에 관한 내용입니다.

2. 로마서에서 바울은 기독교 원죄와 구원에 대한 개념을 로마교회 교인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자신이 세운 교회도 아니고 현장의 분위기도 모르고, 동역자들의 노력으로 세워진 교회에 편지를 통해 “죄의 문제”와 “구원에 대한 이해”를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3. 한편으로는 너무 간단하게 설명해서 이해가 충분할까 싶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하나님의 역사와 지금 우리들이 경험하는 은혜와 구원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의미:전통, 이성, 성경, 경험

4. 성경을 배우고 익히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5. 최근에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상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교회의 전통을 무시하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는 것이 하나님 앞에 바로서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6. 그래서, 원래 제자들이나, 초대교회 시기에 없었던 것들을 다 없애고, 예를 들어 성탄절, 대림절, 사순절, 재의 수요일 등은 성경에 기록된 것이 아니고, 로마 카톨릭도 지키는 것이니 개신교회는 이것을 다 없애야 하나님 앞에 순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7.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즉, 성경은 문자 이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성경을 믿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만 사용하니, 성경이 살아서 역사한다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에 놀랬습니다.

8. 예전에도 몇 번 말씀드렸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주신 영감으로 기록된 공동체 즉 교회의 산물입니다.

9. 초대교회때 우리처럼 이렇게 성경을 읽었을까?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성경을 우리들은 구경할 수 없었고, 있더라도 매우 비싸서, 그리고 라틴어로 써 있어서, 종교개혁과 인쇄술의 발단 이전에는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10. 거기에 복음서는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이 들어 죽음에 이르게 되자 교회가 부랴부랴 기록을 남기기로 하고 다양한 자료들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낸 것이 복음서입니다.

11. 요한복음은 100년경에 기록되었다고 하니까, 만약 처음 초대교회에 없던 것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요한복음도 읽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이 됩니다.

12. 그래서, 지금 우리들이 성경을 읽을 때는 성경의 배경, 성경이 쓰여진 기간의 사건들, 저자의 연령 혹은 인종, 대상, 성경안에 기록된 특징들을 확인하면서 성경을 읽어야 문자 이상의 의미를 우리들은 읽어낼 수 있습니다.

13.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고, 어떤 일을 맡기셨으며, 어떤 방향으로 이끌기를 원하시는지,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이 어디인지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가진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14. 성경읽기가 어려운 것은 문자로만 알려고 하면, 영원히 그 의미를 알 수 없고, 수많은 학자들이 그리고 교회전통이 어떤 이해와 반응을 보였는가를 살펴야 알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죄인이다.

15.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바울이 기독교의 중요한 두가지 주제, 원죄와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6. 어느정도 성경을 읽고,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는 말과, 그리고 “아담”이 왜 연결되는지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런데, 바울이 지금 쓴 편지는 “로마교회”를 향해 쓴 것입니다. 로마교회안에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교인일 수도 있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로마교회의 대부분은 로마라는 이방인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18. 지난번에 한번 말씀드렸는데, 기독교가 로마에서 부흥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랜 정복전쟁과 정치적 갈등으로 소외된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 그리고 긴 전장을 누비고 돌아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던 퇴역군인들을 기독교인들이 정성껏 돌보아 줌으로서 로마교회가 부흥했고, 이후에 로마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9.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지금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해 전하는 내용의 독자들은 “성경에 대해서 잘 모르는 자”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 그런 자들이, “아담”에 대한 정보나 이해가 없었을 것이고, 이에 대해 바울은 구체적으로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는 말로 아담의 역할과 의미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21. 투박하지만, 바울은 매우 직설적으로 “죄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은 인류가 “죄”에 노출된 계기로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22. 마찬가지로, 아담을 잘 모르고, 내용을 잘 몰랐던 로마사람들도,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해하는 측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23. “죄”는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였고, 죄의 근원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을 로마사람들에게 바울은 정확하게 어떻게 죄의 문제가 시작되었고, 모든 인간이 가진 죄성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24. 이에 대해 로마교회의 이방인들도 늘 고민하고 생각해왔던 죄의 근원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서로과 다름: 하지만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25. 당시 로마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 갈등의 문제들은 서로 다른 문화, 가치 등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교회안에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26. 특히 유대인과 이방인들 간의 문제는 종교적인 출발점이 다른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7.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누려온 종교적 전통을 무시할 수 없었고,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외에 다른 종교적 전통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할례문제가 대표적입니다.

28. 겉으로 보기에는 차이는 도드라져 보였고, 당연히 서로 다른 차이로 인해 갈등도 자연스럽다고 생각 했을지 모릅니다.

29. 그런데, 여기에 바울이 예상치 못한 내용을 던진 것입니다.

30.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31. 아무리 서로 다르고,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울은 어떤 차이, 전통, 출신, 배경, 인종과 상관없이 우리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라는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32.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아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이 지닌 죄성에 대해서 이해했을 것입니다. 이방인들도 늘 고민하던 죄의 문제를 아담의 이야기를 통해 이해했을 것입니다. 알 수없이 늘 고민했던 인간의 죄의 문제의 원인을 이방인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잘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33. 바울은 분열이 있는 공동체를 잘 간파하고 그 안에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향해, 다르지 않고, 우리는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모든 인간이 고민하는 죄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34. 여기서 바울의 의도는 “죄인”이라는 것을 각성 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35. 가난한자든, 부자든, 배운자든, 못배운자듯, 인종이 달라도,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36. 어거스틴은 바울의 이 이야기를 통해 기독교 안에 “원죄론”에 대해서 완성시켰고, 이 것은 지금까지도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로 이해하고 있는데, 바울의 의도는 “원죄”론을 확립하는 것보다

37. 서로가 너무 다르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은 모두 “죄인”으로서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다는 보편적인 심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과 다름: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의인이다

38. 바울이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15절부터 시작됩니다.

39.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에 생긴 일은, 아담 한 사람이 범죄 했을 때에 생긴 일과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더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40. 우리는 모두가 차별없이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차별없이 선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넘쳐나는 선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41. 16절에 보면 바울은 좀더 극적으로 비유로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벌어진 일을 설명합니다.

42. “아담으로 인해 지은 죄로 인해 우리들이 유죄가 되었지만, 예수를 통해 우리가 다 무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43. 바울은 죄도 모두가 똑같이 차별없이 받은 것이지만 은혜도 차별없이 모두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44.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그리고 십자가 사건이 모든 것에 대해서 바울은 모두가 차별없이 받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45. 그리고 마지막절에 이로 인해 우리들이 영원한 생명에 이른다고 바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46. 지난 주간 우리들은 두 분의 성도들의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47. 안타깝고, 마음 아픈 상황속에서 목사인 저는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하며 장례예배를 준비했습니다.

48.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 장명숙 집사님이 너무 일찍 하나님이 부르신 것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49. 그렇게 오래 기도했는데, 간절히 기도했는데,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하시면 어떻게 하나님의 의로움을,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50. 그런 가운데, 오늘 말씀은 저에게 새로운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51.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차별없이 누구나 죄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52. 그리고 차별없이 하나님의 은혜와 의로움으로 우리들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깨닫게 해줍니다.

53. 마찬가지로 차별없이 우리들은 모두 죽음을 향한 시간을 지나갈 것입니다. 한 명도 예외 없이 우리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54. 그런데, 예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새로운 생명을 우리들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55. 세상은 죽음을 마지막이라고 이야기하겠지만, 우리들은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오늘 본문은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56. 우리는 다릅니다. 생각도 다릅니다. 바라보는 것도 다릅니다. 기대하는 것도 다릅니다. 꿈도 다르고,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교회의 모습도 다를 수 있습니다.

57.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일치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그리고 십자가 사건으로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의로움을 받았습니다.

58.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부터, 하나님은 진실되게 우리를 사랑하시려고 작정하셨고, 십자가 사건은 우리들과 같은 나약함을 보이심으로 진정한 승리는 강하게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을 통해 보여준 사랑이라는 것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59. 이런 십자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곁에 있는 사람들, 혹은 전적인 타자 즉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0. 바로 이런 마음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곧 내 이웃, 나와 함께하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일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61. 차별 없는 은혜와 의로움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이 땅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내 동료, 나와 함께하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일치함으로 우리는 모두 똑같은 죄인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됨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2. 오늘 읽은 본문, 바울이 이 편지를 쓴 목적은 그 배경과 상황을 이해하면 우리들이 읽어낸 것보다 더 크고 확장된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하셔서, 더욱 성경을 깊이 읽기 위해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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