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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후 5주, 2월5일 주일설교




마태복음 5:13-20

완성을 위한 한걸음: 소금과 빛


1. 소금과 빛은 기독교인의 삶을 상장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어집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사용되어 왔습니다.

2.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대부분 이 본문을 읽어내지만, 사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되도록 노력한다”는 의미는 없고, “소금과 빛”이다 라는 “Being”즉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부여한 존재의 의미로 이미 “소금과 빛” 이다. 라는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특별하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겠지만, 예수를 믿는 자들이 예수 믿는 자 답게 살도록 노력 한다는 문장에 우리들은 익숙하지만, 사실, 예수 믿는 자는 예수 믿음과 동시에 예수 믿는 자의 삶을 사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 그래서 우리들이 “예수를 구주로 고백한다”는 이 고백의 의미는 “생각”, 혹은 “마음”에만 머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를 구주로 고백한자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의미가 부여된다는 말입니다.

5. 뭐 어렵게 복잡하게 느껴지시겠지만, 이런 겁니다. 다이어트를 한다는 생각과 마음만 있으면 다이어트를 하는 게 아닌 것이고, 다이어트를 할 때 다이어트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6. 오늘 본문은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산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첫번째 가르침 중에 하나입니다. 지난주는 복에 대한 가르침으로 첫번째 쳅터였다는 오늘은 두번째 챕터로 “소금과 빛”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올바른 율법의 완성”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7. 마태복음은 유대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매우 중요한 가르침일 수 있습니다. 흔히 율법을 부숴내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한 것이 복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은 올바른 율법의 이해와 실천 그리고 이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에 목적을 두고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8. 다시말해, 율법이 악한것이 아니라, 율법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거나 차별하거나, 구별 짓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율법자체는 이미 우리들에게 주어진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위한 훈련서는 된다는 것입니다.

9. 그래서 17절-18절에서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1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0.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율법이 불완전한 것을 채우기 위한 것이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이 아니라, 율법을 바르게 완성하는 것”에 예수님 사역이 목적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1. 그러면 율법을 완성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12. 20절에 예수님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보다 의롭게 행동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13. 이 구절의 내용은 매우 실천적인 내용입니다. 율법은 “의로움”을 위해 사용되어지는 의미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는데 기억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분배의 공평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4. 단순히 물질이 골고루 분배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마음, 관심,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기회,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평화와 사랑등 다양하게 우리들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적인 것부터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다양하게 공정하게 분배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15. 사랑을 하는데, 사람에 따라 사랑의 차이가 있습니다. 관심을 갖는데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 관심을 나눕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그런 기준에서만 경험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들이 바로, 율법주의자나 바리새인보다 의롭지 못한 삶 가운데 있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16. 우리는 대부분, 이 본문에서 이 문장에서 자유로울 것처럼 당당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전체를 살펴보면, 특히 소금과 빛의 의미를 되새기면, 우리들이 지금까지 생각했던 온전한 그리스도인, 그리고 여기서 완성을 위해 예수님이 노력해야 한다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가르침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7. 우선, 당시의 소금은 금보다 귀한 가치를 의미합니다. 라틴어로 소금은 Salalrum이고, 로마시대에 관료들은 봉급을 소금(Salt)으로 받았기때문에 여기서 Salary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당시 군인들이 맡은 임무 중에 소금을 운반하는 일이 중요한 임무 였기때문에 군인들을 Soldier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18. 금이 없어도 사람이 살수 있지만, 소금이 없으면 살수 없습니다. 지금이야 소금을 매우 흔하게 생각하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소금이 흔함에도 없으면 안되는 귀한 것입니다.

19. 여기서 소금이 맛을 잃다는 다는 것은 귀한 가치로서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가치를 잃은 소금은 길바닥에 뿌려지고, 사람들이 짓밟는다고 표현했는데, 다분히 예수님의 의도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 가치를 잃은 소금은 귀한 존재가 아니라 길바닥에서 흔히 보이는 흙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짠맛을 내야 귀한 가치를 인정받지만, 짠 맛을 잃으면 소금이 아니라 그냥 흙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겠죠.

21. 거기에다, 예수님은 정확하게 “너희는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처럼 살아라, 혹은 소금이 되도록 노력하라가 아닙니다.

22. 이미 존재에 대한 정의가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짠맛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23. 소금이라고 하는데, 짠맛을 못낸다는 것은, 마치 예수님의 제자인데, 예수의 제자처럼 살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4. “내가 예수를 따르겠다” 혹은 “내가 기독교인이다!” “나는 교회에 다닌다”라는 의미는 “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내가 기독교인이 되려고 노력한다” “내가 교회에 다니려고 노력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를 따르고, 기독교인으로 살고 있고, 교회 다닌 자로서 삶을 이미 시작한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25. 14절에도,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정의하십니다. “빛이 될 것이다”가 아니라, 존재의 정의를 “빛”이라는 것입니다.

26. 그 빛은 마치 산 위에 있는 마을과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등불을 켜서 등경위에 두는 이유는 이 빛을 통해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환하게 비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7. 산 위에 있는 마을을 숨길 수 없다는 의미는 결국 빛은 드러냄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빛의 존재는 누군가를 환하게 하는 역할이지 스스로를 빛내려고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8. 다르게 이야기하면, 그리스도인의 존재의 궁극적인 방향은 스스로 구원받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환하게 비치기 위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9. 그러니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교회안에 사람들이 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밖에 사람들에게 빛을 드러냄으로 사람들을 환하게 하는 역할이 교회의 존재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0. 소금은 녹아짐으로 맛을 내고, 빛은 스스로를 태움으로 빛이 더욱 존재하듯이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 소금이고, 빛이라는 존재의 선언은 우리들이 스스로 채워가는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녹아지고, 태워냄으로 즉 스스로를 비워내는 존재로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1. 어제, 어노인팅 찬양집회를 은혜롭게 마쳤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어노인팅이 지금까지 해온 한국교회에 대한 헌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교하는 심정으로 초청한 것이고, 펜데믹 이후에 우리 교회가 이 지역에서 여전히 교회로서 든든히 세워져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집회였습니다.

32. 예상한 숫자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고, 오랜만에 의자들을 통로에 깔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특별하게 어떤 홍보를 한 것도 아닌데, 본당을 가득 채웠으니, 우리들이 계획하고 준비한 대로 은혜 가운데 집회를 잘 마친 것 같습니다.

33. 하루 집회지만 꼼꼼히 보니 챙겨야할 게 많았습니다. 14명이나 되는 팀원들을 라이드 하고, 식사하고 머물 곳을 찾고 뭐이런것만 필요 했겠어요. 다양한 일들이 꼼꼼히 따져보니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34. 중간에 필요한 것들을 부탁했더니 다양한 도움과 헌신의 손길들을 경험했습니다.

35. 끝나고 나서 하루정도 보내고 제 마음에 든 생각이 뭐냐면, 비록 이런 사역을 통해 우리 성도들도 기쁘고 저도 물론 기쁘고 감사하지만, 우리들이 기도하고 마련한 잔치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나눔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6. 이자리를 빌어서 잠깐 말씀드리면 기도해주시고, 이 집회를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예산과 계획으로 후원해주신 임원회원 분들과 모든 열린교회 성도님들, 그리고 갑작스러운 도움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모든 성도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37. 아마, 목사님이 일을 너무 크게 벌이는게 아냐?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느끼는 것 또는 오늘 본문을 통해 소금과 빛이라는 존재의 선언은 우리들이 앞으로 사역할 방향을 잘 잡으면 부족한 것들을 함께 채워갈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38. 쌩떽 쥐페리가, “당신이 배를 만들려고 하거든 누구는 나무를 가져오고 누구는 톱을 가져오라는 세세한 지시 대신에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갖도록 하라.”라는 말처럼 저는 계속해서 꿈을 꾸고 그 꿈을 세워가기 위해 노력하고, 그 꿈이 교회와 여러분의 꿈이 되도록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지금 제가 고백하는 빛과 소금의 존재로서 지녀야할 방향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9. 교회는 신앙생활의 종착역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나는 구원받았다는 안심에 머무르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40. 교회는 세상 구원을 위한 출발역이고 훈련소이지 종착역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41. 예수 따르고, 교회를 다닌다는 그리스도인들은 권리를 박탈당한 자를 세워주고 희망을 잃은 자를 돌보고 정의를 추구하고 평화를 도모하며 핍박이 있더라도 신념을 지키면서 기존 질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42. 제가 자주 말씀드린 것처럼, 세상에 쓸려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과는 다른 관점으로 삶을 살아내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소금과 빛이라는 존재로서의 고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3. 교회는 한 개인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일에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런 개인의 심령 변화와 더불어 깨끗한 사람들이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을 꿈꿔야 합니다. 그리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44. 생각한 대로 살아야지, 생각나는 대로 살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45. 16절에,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어버이를 찬양하게 하여라.” 라는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46. 우리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전적인 타자! 즉 내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일 수도 있고, 내가 아닌 다른 이일 수도 있고, 열린 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일 수도 있고, 교회가 아닌 교회 밖에 있는 모두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47. 소금과 빛의 역할은 이미 우리들에게 부여된 것이고, 소금이 무엇인지, 빛이 어떤 의미인지를 머리속에 혹은 생각으로만 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내야 반드시 소금은 맛을 내는 것이고, 빛은 환하게 다른 이들을 비추는 것임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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