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1일 토요일 저녁 11시
이사야 43:16-21
기억과 새일
오늘 본문은 서로 상반되는 두 문장이 큰 축을 이루고 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셨던 일을 기억하라고 전하면서, 동시에 지나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일은 생각하지 말라고 전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제 새 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기대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기억과 새일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중심에 있는 내용이니, 과연 잊어버림과 새로운 일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살펴야겠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우리들도 지금 이 동시적 사건에 놓여있다.
한해를 뒤로 해야 하는 상황에 동시에 우리는 새해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고백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예전에,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 “이제 난 결심했어”라는 프로가 있었다. 선택에 순간에 선택한 그 방향에 따라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살펴보는 프로이다. 웃자고 만든 프로그램이지만, 면면히 살펴보면, 참 무서운 프로그램이다. 인생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따라서 인생이 바뀐다고 하니, 얼마나 우리들에게 매일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이 부담이 되겠는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도 이런 선택의 순간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분명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우리의 삶이 놓여있다고 고백하지만, 순간순간 밀어닥치는 수많은 일들이 적어도 우리들을 선택의 고민으로 몰고 가는 듯 하다.
이번주간에 교회 스키캠프를 다녀왔다. 제 작년부터 시작한 겨울 프로그램이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올해는 수월하게 잘 다녀왔는데, 작년에는 15시간 걸려서 도착해서 그런지, 올해도 준비하면서 여러가지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작년에 한참 길이 막히는데, 제가 주로 사용하는 네비게이션이 그 막힌 길을 가로지르는 샛길을 안내했다. 꽉 막힌 길위에서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길을 가야 할까? 아니면 원래 막히는 길을 가야 할까? 고민하다. 샛길을 선택했다.
막히는 길을 뒤로 하고, 샛길로 가로질러 간다니 기분이 좋았다. 구불구불한 길이긴 해도 나름 눈꽃을 보고 달리니 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거의 정상쯤 올라서서 이제 가로질러가는 길로 내리치면서 몇 분만 달리면 되는데, 앞서가던 차들이 돌아온다. 그러면 길이 눈에 막혔으니 돌아가라는 것이다.
얼마나 막막한가? 늘 믿었던 네비게이션의 배신감에 막막했고, 돌아가서 다시 그 막힌 길 위에 올라서야 한다는 막막함이 밀려왔다.
그럴 때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 그냥 갈길 갈 걸, 조금 빨리 가겠다고 하다가, 더 고생이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문제를 일으킨 것에 원망하게 된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스스로를 자책한다.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한가지 위안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아름다운 설경을 본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막히는 길로 접어들어 15시간을 운전하고 레이크타호에 도착했다.
아마 평소 같았으면 냉정하게 판단했을 것 같다. 그런데, 너무 막히다 보니, 그리고 다른 일행보다 좀더 일찍 가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두르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이런 저런 위안 거리를 찾아보았지만, 결국 선택에 대한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기억과 새일은 바로 이런 잘못된 선택에 노출된 이스라엘에게 던져진 해답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의 긴 흐름에 이스라엘은 늘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고, 약속이 있었다. 그 약속은 영원 불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늘 하나님의 든든한 후원이 그들의 삶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속에 살아갔다.
그 확신이 있으면~! 잘 살면 될텐데,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은 늘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겼던 모습을 보여준다.
성경을 읽다보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출애굽의 놀라운 경험을 하고도, 다시 고기를 삶아 먹었던 고기가마가 생각나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이스라엘은 불안해서 우상을 만들어낸다. 이해가 되나? 이해가지 않는 행위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하나님이 함께 동행하시는 데, 이스라엘은 틈만 나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잃어버린다.
신명기서를 통해 왜 이스라엘에게 종교적 법도를 기록하게 했냐면, 자꾸 예배하는 것을 잊어버리니까 엉뚱하게 다른데 신경 쓰니까 신명기서 같은 성경을 모세가 설교하고 기록한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삶도 비슷하지 않은가? 신앙생활 늘 잘하면 좋은데, 시험에 들 때가 있다. 낙심할 때도 있다. 사람이 미워질 때가 있다.
하나님이 늘 함께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언제나 불안함에 전전긍긍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여러분들이 지나온 시간은 어땠는가? 하나님이 늘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며 살아오셨나? 아니면 중간 중간 잊어버리고, 엉뚱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우선순위에서 신앙생활이 가까이서 경험되지 못한 적이 없는가?
아마 생각해보면 있을 것이다. 언제나 완벽하면 좋지만, 우리들은 이 시간이 되면 후회한다. 왜 그랬을까??
그 언저리에 지금,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우리들이 서있다. 바로 이런 이들에게 주어진 말씀이 바로 오늘 나눈 말씀이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다. 16절에, 바다가운데 길을 내고, 거센 물결 위에 통로를 내고, 17절에 말과 병거, 병력과 용사들을 쓰러뜨려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고 말씀하신다. 16절 17절은 출애굽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나님이 바로 이 출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라는 거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다.
18절에 전혀 다른 이야기가 등장한다. “지난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일을 생각지 말라”
상반된 이야기이다. 기억하라와 기억하지 말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기억하라~! 하지만, 실수하고, 잘못하고, 낙심하고, 시험들고 미워했던 것은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그 순간조차도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상을 섬기고,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은 것도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라가 망해서 포로로 끌려간 것도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 기억하지 말고, 하나~! 이것만 기억하라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
오늘 바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이 바로 이런 시간이다. 지나간 일, 돌아보면, 후회가 밀려오고, 상처가 밀려오고, 아픔이 밀려오는데 다 잊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구원하셨다는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하라는 것이다.
19절,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 새일이다. 하나님의 새일에 오직 하나, 구원하신 하나님만 붙들고 함께하자는 거다. 2023년 새해, 여러 계획이 있겠지만,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새일에 오직 구원하신 하나님만 붙들고 함께하자는 것이다.
그 새일이 사막에 강물을 내고, 광야에 길을 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다.
사막에 강물을 낸다는 것은 사막을 푸른 초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광야에 길을 낸다는 것은 광야에 생명이 지나가는 통로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들이 고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든 생각들을 하나님의 새일을 통해 완전히 바꾸신다는 의미이다.
2023년 밀려오는 불가능한일, 꿈꾸기조차 민망한일들이 밀려올 것이다. 재정으로도 안되고, 사람 없어서 안되고, 힘들어서 안되고, 싫어서 안되고 하는 것들을 전부 몰아내고, 재정을 넘어선 은혜와 사랑으로 , 힘든 것보다는 보람과 감사로, 싫은 것이 아닌, 사모함과 인내함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새일을 만들어 가신다는 것이다.
그 새일은 오직 하나~!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 하나만 기억하면, 이 새일을 이루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를 냉정함과 합리적인 생각으로 몰아넣으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매년 이맘때가 되면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들을 향해, “내가 너를 구원한 하나님이다”라는 이 말씀 하나를 기억하는 성도에게, 교회공동체에 세상의 생각들을 넘어서는 새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한해가 가고 또 새해가 온다. 늘 반복적인 일이다. 작년 이맘때, 올 한해도 어찌 살 것인가 큰 포부와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 해의 마지막 날에 우리가 여기에 있다. 내년 2023년에도 똑같은 마음이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다른 것 복잡한 것 생각하지 마시고, 한가지에 생명을 걸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 이 사실 하나를 붙들고, 하나님의 새일에 동참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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